콜럼버스 이후, 신대륙을 향한 유럽인들의 모험
1492년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유럽인들은 어떻게 아메리카 대륙을 정착했을까? 역사와 영화로 만나는 신대륙 개척의 드라마
1620년, 102명의 모험
1620년, 102명의 사람들이 낡은 배 한 척에 몸을 실었다.
그들의 목표는 신대륙—아메리카 대륙이었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혹은 새로운 삶을 꿈꾸며, 영국의 플리머스항을 떠난 메이플라워호의 승객들은 66일 간의 항해 끝에 현재의 매사추세츠 해안에 도착했다. 이들이 바로 '필그림 파더스'—미국 역사의 신화적 존재들이다.
그런데 잠깐. 이들이 정말 최초의 정착민이었을까? 그리고 그 전에는 뭐가 있었을까?
콜럼버스 이후, 유럽의 흥분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발을 내디딘 순간, 유럽은 들썩였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과 페르디난드 왕은 콜럼버스의 항해를 후원했고, 그 이득은 상상을 초월했다. 금, 은, 새로운 농산물—유럽이 꿈꾸던 모든 것이 신대륙에 있었다.
물론, 그곳에는 이미 오랫동안 살아온 원주민들이 있었다. 하지만 유럽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아니, 보이기는 했지만 다르게 보였다.
스페인은 빠르게 움직였다. 1493년부터 콜럼버스는 여러 번 항해를 반복했고, 스페인은 카리브해 전역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카리브해 원주민들은 스페인의 착취와 질병으로 급속도로 사라졌다. 이것이 바로 신대륙 정착의 첫 장이었다.
하지만 영국과 프랑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제임스타운: 영국의 첫 발걸음
1607년, 버지니아 회사의 지원을 받은 영국 식민지 개척단이 포토맥 강 하류에 정착했다. 그곳이 바로 제임스타운이다. 이곳은 단순한 해적 소굴이나 일시적 무역소가 아니었다. 이것이 바로 첫 번째 영구적 영국 식민지였다.
제임스타운의 초기 정착민들의 삶은 상상 이상으로 참담했다. 영화 《The New World》(2005, 감독 테렌스 맬릭)에서 보여주는 제임스타운의 모습은 역사적으로도 상당히 정확하다. 배우 콜린 파렐이 연기한 존 스미스의 실화와, 역사 속 포카혼타스의 이야기는 이 영화에서 살아난다. 물론 영화는 로맨틱하게 각색했지만, 그 기저에 있는 긴장과 갈등—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첫 만남의 불안함—은 잘 담아냈다.
제임스타운에서는 식량 부족이 심각했다. 1609년~1610년 겨울은 "기아의 겨울(The Starving Time)"이라 불린다. 정착민 500명이 60명까지 줄어들었다.
메이플라워호와 필그림 파더스의 꿈
13년 후인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온다.
제임스타운의 성공(혹은 생존)을 본 유럽인들, 특히 종교의 자유를 찾던 영국의 청교도들이 신대륙을 향했다. 이들이 필그림 파더스다. 영국 플리머스 인근 레이든에서 신앙의 자유를 찾던 이들은 결국 신대륙으로 향하기로 결정했다.
메이플라워호의 항해는 메이플라워 콤팩트라는 선박 위의 헌장으로도 유명하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승객들은 함께 살아가기 위한 규칙을 만들었다. 이것이 훗날 미국 민주주의의 뿌리가 되었다는 역사가들의 주장도 있다.
첫 겨울은 또 다른 악몽이었다. 반 이상의 정착민이 추위와 질병으로 죽었다. 하지만 그 다음 봄, 원주민 스콰토(Squanto)의 도움으로 옥수수 재배에 성공했다. 그리고 가을, 첫 수확을 함께 축하했다. 이것이 훗날 '추수감사절(Thanksgiving)'로 전설화되었다.
영화가 보여주는 역사의 그림자
디즈니 애니메이션 《포카혼타스》(1995)는 포카혼타스 이야기를 완전히 각색했다. 실제 포카혼타스는 존 스미스를 구했을 리도 없고, 존 스미스와 로맨틱한 관계도 없었다. 더군다나 영화는 그녀의 비극적 말년—영국으로 끌려가 존 롤프와의 강제 결혼, 그리고 타향에서의 죽음—을 감춘다.
하지만 영화는 또 다른 진실을 담는다. 유럽인과 원주민 사이의 불가피한 충돌, 그리고 그 속에서 개인의 희망이 얼마나 무력한지에 대한 진실이다.
드라마 《Salem》(2014~2017)은 초기 식민지 시대의 청교도 사회를 보여준다. 종교 광신, 마녀사냥, 내부 갈등—이것들이 바로 신대륙에 정착한 초기 유럽인들의 정신 세계였다. 역사적으로 정확하지는 않지만, 시대의 정신(Zeitgeist)을 잘 포착했다.
그 후의 이야기
18세기를 거치면서, 동부 해안에는 13개의 영국 식민지가 형성되었다. 프랑스는 미시시피 유역에 루이지애나를 건설했고, 스페인은 남부와 서부를 장악했다.
그들이 이 땅을 개척했다고 믿었던 것.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던 것. 하지만 이 땅은 이미 만년 이상, 원주민들의 세계였다.
1776년 독립선언서에 적힌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말은 아이러니하게도, 흑인 노예와 원주민들을 배제했다. 그 모순이 미국 역사 전체를 관통한다.
마치며
매년 추수감사절, 미국인들은 필그림 파더스를 기념한다. 그 속에는 로맨틱한 신화가 있다. 하지만 영화와 드라마가 우리에게 상기시켜주듯이, 역사는 항상 서로 다른 진실들을 동시에 담는다.
콜럼버스 이후 아메리카 대륙 정착은 단순한 개척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만남과 충돌, 꿈과 절망, 신념과 타협이 뒤섞인 인간 드라마다. 우리가 영화로 만나는 그 이야기들은, 결국 우리 시대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정말로 역사를 배웠는가? 아니면 반복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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