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절에 떠난 별 — 장국영(Leslie Cheung)을 기억하며, 그리고 패왕별희의 귀환
2003년 4월 1일, 세상은 그가 농담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진짜였다. 장국영 22주기, 그리고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 재개봉을 앞두고 그를 다시 기억합니다.
만우절, 그러나 농담이 아니었다
2003년 4월 1일 오후 6시 41분.
홍콩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4층에서 한 남자가 뛰어내렸다.
뉴스가 전해지자 세상은 처음에 웃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데, 만우절 장난이겠지."
그러나 그것은 장난이 아니었다.
향년 46세. 장국영(張國榮, Leslie Cheung Kwok-wing)은 그렇게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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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누구였나
장국영은 1956년 9월 12일 홍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당시 홍콩 최고의 양복 재단사로, 코코 샤넬과 앨프리드 히치콕의 옷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화려한 집안이었지만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한 어린 시절이었다.
1977년 아시아 가요제에서 2위를 차지하며 가요계에 데뷔한 그는 1980년대 홍콩 팝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당시 홍콩 음악계에서 담보쟁(譚詠麟, Alan Tam)과 함께 양강 구도를 형성하며 수백만 팬의 사랑을 받았다.
가수로만 끝나지 않았다. 영화배우로서도 그는 빛났다.
- 영웅본색(英雄本色, 1986) — 오우삼 감독, 주윤발과 함께
- 아비정전(阿飛正傳, 1990) — 왕가위 감독
- 패왕별희(覇王別姬, 1993) — 천카이거 감독 ← 오늘의 주인공
- 동사서독(東邪西毒, 1994) — 왕가위 감독
- 해피투게더(春光乍洩, 1997) — 왕가위 감독
패왕별희 — 그의 가장 빛나는 순간
패왕별희(覇王別姬, Farewell My Concubine, 1993)
천카이거(陳凱歌) 감독이 연출하고, 장국영과 장풍의(張豐毅), 공리(鞏俐)가 주연한 이 영화는 단순한 영화가 아니다. 20세기 중국이 겪은 모든 격변 — 일제강점, 국공내전, 문화대혁명 — 을 두 경극 배우의 삶과 사랑으로 담아낸 서사시다.
장국영이 연기한 인물, 정접첩(程蝶衣).
어릴 때부터 경극 학교에서 여역(女役)을 맡도록 훈련받은 그는 스스로를 여자라고 믿게 된다.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경계를 잃어버린 인간. 장국영은 이 복잡한 인물을 연기하기 위해 실제로 경극을 배웠고, 그 결과는 스크린을 넘어 관객의 심장에 박혔다.
"나는 본래부터 여자다." — 정접첩, 패왕별희
이 영화는 1993년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 중국어권 영화 사상 최초이자, 지금도 전설로 남아 있는 수상이다.
2026년 4월 1일, 그 영화가 돌아온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覇王別姬 The Original) 이 2026년 4월 1일 재개봉한다.
하필 그날, 그가 세상을 떠난 바로 그날에.
이것이 우연인지 의도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 그날 극장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장국영에게 22년 만의 재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스타의 거리에 새겨진 이름
홍콩 침사추이 스타의 거리(Avenue of Stars)에는 장국영의 핸드프린트가 새겨져 있다. 매년 4월 1일이면 팬들이 꽃을 들고 이곳을 찾는다.
홍콩이, 아시아가, 그를 사랑한 모든 사람이 그를 잊지 않았다는 증거다.
그가 남긴 것
장국영은 가수로서, 배우로서 시대를 초월한 작품들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남긴 것은 어쩌면 더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완벽하게 아름다운 순간들.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 스크린 위에서 눈물 흘릴 때, 그는 완전히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은 필름과 음반에 영원히 박혀 있다.
4월 1일, 극장이 어두워지고 패왕별희가 시작될 때.
우리는 다시 한번 그 완벽한 순간 속으로 들어간다.
장국영 (張國榮, Leslie Cheung Kwok-wing) 1956년 9월 12일 — 2003년 4월 1일
"나는 죽어도 괜찮아. 내 음악과 영화가 살아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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