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이 전쟁터에서 맞닥뜨릴 때 — 가자지구의 2026년 라마단
이슬람 최대의 성월 라마단이 시작된 가운데,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들은 폐허 속에서 금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신앙과 생존이 교차하는 이 역설적인 풍경을 들여다봅니다.
폐허 위에서 초승달을 올려다보다
상상해보세요. 지붕이 무너진 건물 옆, 비닐 천막 아래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대추야자 한 알로 금식을 깨는 장면을. 물도 부족하고, 전기도 없고, 포격 소리가 멀리서 끊이지 않는 그곳에서 — 그래도 사람들은 "비스밀라(신의 이름으로)"를 속삭이며 입을 엽니다. 2026년 3월, 가자지구의 라마단 풍경입니다.
라마단이란 무엇인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은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닙니다. 무슬림들은 이 한 달 동안 해 뜨기 전부터 해 질 녘까지 음식과 물, 흡연을 삼갑니다. 금식은 신체적 절제이자 영적 정화입니다. 저녁 해가 지면 이프타르(Iftar)로 하루를 마감하고, 자정 무렵엔 수흐르(Suhoor)로 새벽 금식을 준비합니다. 이 시간은 가족과 이웃이 함께 모이는 공동체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2026년의 가자지구에서 이 신성한 달은 전혀 다른 얼굴로 찾아왔습니다.
폭격 속의 이프타르
2023년 10월에 시작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미 2년 5개월째로 접어들었습니다. 유엔 기관들에 따르면 가자지구 북부의 건물 70% 이상이 파손되거나 파괴된 상태입니다. 식수 정화 시설의 대부분이 기능을 잃었고, 의약품과 식량 반입은 여전히 단속적으로 허용됩니다.
라마단 기간 중 금식은 의무이지만, 이슬람 법학은 예외를 인정합니다. 병자, 임신부, 그리고 극도의 굶주림 상태에 있는 사람은 금식을 미룰 수 있습니다. 가자의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이미 주민들에게 "건강이 허락하는 한에서만 금식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계율마저 생존 앞에 유연하게 해석돼야 하는 현실 — 이것이 2026년 가자의 라마단입니다.
국제사회가 바라보는 시선
중동 전역에서 라마단은 휴전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슬람 세계는 라마단 기간 분쟁 중단을 촉구해왔고, 아랍 국가 지도자들도 올해 이스라엘 측에 인도주의적 일시 정전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협상은 교착 상태를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와 카타르가 중재를 이어가고 있지만, 하마스의 인질 석방 조건과 이스라엘의 군사작전 지속 의지 사이의 간극은 좁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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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아랍 세계의 무슬림들은 이 라마단을 "연대의 달"로 규정하며 가자 지원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집트 카이로의 한 모스크에서는 매일 이프타르 후 가자를 위한 특별 기도 시간이 열립니다. 신앙은 국경을 넘습니다.
🎬 영화·드라마 속 중동
이 복잡한 현실을 이해하는 데 영화가 뜻밖의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오마르 (Omar, 2013)》**는 팔레스타인 감독 하니 아부-아사드의 작품으로, 점령지 청년의 저항과 배신, 사랑을 그립니다. 분리장벽을 넘어 이프타르를 함께하는 장면은 가자의 현실과 묘하게 겹칩니다. 다만 영화는 개인의 심리 드라마에 집중하며 정치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실과 거리를 둡니다.
《천국: 지금 (Paradise Now, 2005)》 역시 같은 감독의 작품으로, 자살 폭탄을 준비하는 두 청년의 하루를 따라갑니다. 종교와 절망이 교차하는 묘사는 불편하지만 정직합니다. 픽션이지만, 극단적 선택이 만들어지는 구조적 맥락을 냉정하게 보여줍니다.
**《가자의 눈물 (Gaza in Crisis, 2010)》**은 촘스키와 파퍼의 대화를 담은 다큐멘터리로, 팔레스타인 문제의 역사적 뿌리를 차분히 짚습니다. 오늘의 뉴스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이 다큐가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초승달 아래서 남는 질문
라마단의 초승달은 올해도 가자 하늘 위에 떴습니다. 폭격의 먼지가 가라앉지 않은 밤하늘에서. 금식은 자발적 결핍을 통해 타인의 굶주림에 공감하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선택이 아닌 강요된 굶주림 속에서 라마단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어떤 공감을 빚지고 있을까요?
신앙은 살아남았습니다. 가자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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