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2년, 인류가 외면한 아이들의 이름
가자 지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국제사회의 피로감이 쌓이고 있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현실은 여전히 생생하다. 숫자 뒤에 가려진 얼굴들을 다시 들여다본다.
우리는 몇 번이나 "충격받았다"고 말했을까
전쟁이 길어지면 인간은 숫자에 익숙해진다. 사망자 4만 명, 부상자 10만 명. 뉴스 자막 한 줄을 스크롤로 넘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채 1초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가자에서는 오늘도 누군가의 아이가 이름을 얻고, 이름을 잃는다.
2026년 4월 7일. 2023년 10월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이스라엘의 대규모 반격이 시작된 지 약 18개월이 지났다. 국제사회는 수십 차례 휴전을 논의했고, 수십 차례 실패했다.
가자 지구, 작은 땅의 거대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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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지구는 서울 면적의 약 60%에 불과한 땅이다. 그 안에 약 220만 명이 살고 있었다—전쟁 이전까지는. 이 지역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전쟁(팔레스타인 측은 '낙크바', 즉 대재앙이라 부른다) 이후 이집트의 통치를 거쳐 19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의 점령 아래 놓였다. 2005년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철수했고, 2007년 하마스가 정치적 통제권을 잡으면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봉쇄가 시작됐다.
봉쇄 17년. 가자의 청년 중 상당수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이 땅 밖을 나가본 적이 없다. 그들에게 "바깥 세계"는 스마트폰 화면 속에만 존재한다.
전쟁의 언어와 침묵의 언어 사이에서
이스라엘은 이번 작전의 목표를 "하마스 궤멸"과 "인질 귀환"으로 규정했다. 반론의 여지가 없는 자기방어권이다. 그러나 유엔 산하 기구들과 국제 인권단체들은 민간인 사망 비율, 병원과 학교에 대한 공격, 구호 물자 반입 제한을 두고 "비례성 원칙" 위반을 거듭 지적했다.
한편 하마스는 민간인을 방패로 삼는다는 비판을 받으며, 그들이 내세우는 "저항"의 언어는 이스라엘 민간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다. 어느 쪽의 폭력도 민간인의 죽음을 면죄해 주지는 않는다.
국제사회의 분열도 깊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자위권을 지지하면서도 인도주의적 통로 확보를 압박했고, 아랍 국가들은 공식 성명과 실제 행동 사이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피로감이라는 이름의 공범
"전쟁 피로감(war fatigue)"은 심리학 용어이기도 하지만, 정치적 선택이기도 하다. 관심을 거두는 순간, 구조 조정은 멈추고 책임자들은 면죄부를 얻는다. 가자의 아이들이 숫자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가 계속 그들의 이름을 부르는 수밖에 없다.
🎬 영화·드라마 속 중동
이 현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작품들이 있다.
**《5개의 부서진 카메라》(2011)**는 팔레스타인 농부 에마드 부르나트가 서안지구 마을의 일상을 직접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다섯 대의 카메라가 차례로 총격과 폭발에 파괴되는 과정이 곧 이 지역 주민의 삶이다. 가자와는 지리적으로 다른 서안지구가 배경이지만, 봉쇄와 저항의 정서는 놀랍도록 겹쳐 보인다.
**《오마르》(2013)**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경계선을 넘나드는 청년의 이야기로, 분리 장벽과 심리적 감시가 만들어내는 공포를 픽션으로 재현한다. 실제 정치적 해법보다 인간의 선택에 집중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자의 의사들》(2018)**은 봉쇄된 가자에서 근무하는 의료진의 이야기를 담았다. 지금의 가자 병원 상황과 교차해서 보면, 다큐가 아니라 예언처럼 느껴진다.
숫자를 이름으로 되돌리는 일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무관심은 또 다른 형태의 종전이다—가장 비겁한 방식의. 오늘, 뉴스 한 꼭지를 더 읽는 것, 이름 하나를 더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이 먼 땅의 아이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작고, 가장 솔직한 연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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