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이 끝난 자리, 이드 알피트르: 전쟁 속에서도 축제는 온다
2026년 라마단이 마무리되며 중동 전역에 이드 알피트르 축제가 찾아왔다. 그러나 가자, 시리아, 레바논의 현실은 축제의 빛만큼이나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총성 사이로 들려오는 '이드 무바라크'
"이드 무바라크(عيد مبارك)" — 복된 축제가 되길 바란다는 이 인사말이, 올해도 어김없이 중동의 새벽을 깨웠다. 2026년 4월 9일, 이드 알피트르(Eid al-Fitr)가 시작됐다. 한 달간의 금식과 기도, 성찰로 가득 찼던 라마단이 막을 내리고, 이슬람 세계 최대의 명절이 열린 것이다.
그런데 올해의 이드는 유독 복잡한 감정으로 물들어 있다.
이드 알피트르란 무엇인가
![]()
이드 알피트르는 아랍어로 '단식을 깨는 축제'를 뜻한다. 이슬람력으로 10번째 달인 샤왈(Shawwal)의 첫날, 초승달이 뜨는 순간 라마단의 종료와 함께 시작된다. 전 세계 약 19억 명의 무슬림이 이날 새벽 예배를 드리고, 가족과 함께 음식을 나누며, 가난한 이웃에게 '자카트 알피트르(Zakat al-Fitr)'라는 의무 기부를 실천한다.
터키에서는 '라마잔 바이라미', 이란에서는 '이드 피트르', 남아시아에서는 '이드울 피트르'로 불리지만 그 본질은 같다. 함께 먹고, 용서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
카이로의 알아즈하르 광장은 새벽부터 흰 카피예(전통 두건)를 두른 남성들로 가득 찼고, 암만과 리야드의 쇼핑몰은 전날 밤부터 불야성을 이뤘다. 아이들은 새 옷을 입고 '이디야(Eidiyya)'라는 용돈 봉투를 기다린다. 한국의 설날 세뱃돈과 놀랍도록 닮아있다.
그러나 가자에는 명절이 없다
![]()
문제는, 이 축제가 모두에게 닿지 않는다는 현실이다.
가자지구에서는 오늘도 포성이 멈추지 않았다. 2023년 10월 이후 지속된 분쟁은 어느덧 두 번째 이드를 전쟁 속에서 맞이하게 만들었다. UNRWA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가자 북부 주민 대다수는 깨끗한 물조차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드 옷' 대신 텐트 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아이들의 사진이 소셜미디어에 퍼지며 전 세계 무슬림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레바논 남부도 마찬가지다. 2024년 이후 재건이 더디게 진행되는 가운데, 피란민 캠프에서 맞는 이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기도로 가득하다.
한편, 걸프 국가들—사우디아라비아, UAE, 카타르—에서는 화려한 불꽃놀이와 대규모 공연이 펼쳐졌다. 같은 날, 같은 인사말을 쓰면서도 이렇게 다른 이드가 공존한다는 사실이 오늘날 중동의 분열된 현실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 영화·드라마 속 중동
이 복잡한 감정의 결을 가장 잘 포착한 작품이 몇 편 있다.
**《낙타도 운다 (Paradise Now, 2005)》**는 팔레스타인 청년 두 명이 폭탄 테러를 앞두고 보내는 마지막 하루를 그린다. 명절도, 미래도 없는 청년들의 눈빛이 오늘의 가자 아이들과 겹쳐 보인다. 다만 이 영화는 폭력을 미화하기보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단순한 정치 선전과 다르다.
**《레바논 (Lebanon, 2009)》**은 1982년 레바논 전쟁을 탱크 내부의 시선으로만 담아낸 이스라엘 영화다. 축제와 일상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전쟁의 공포를 밀실 공포증적 연출로 전달한다. 실화 기반이지만 일부 전투 장면은 극적으로 재구성되었다.
**《가자를 기억하라 (Tantura, 2022)》**는 1948년 나크바(대재앙) 당시 팔레스타인 마을 탄투라에서 벌어진 사건을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이드마다 고향을 기억하는 팔레스타인 디아스포라들의 이야기와 직결된다.
축제는 결국 인간의 언어다
이드 알피트르는 단순한 종교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는 아직 살아있고, 함께이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폐허가 된 가자의 골목에서도 누군가 단 과자 하나를 나누며 "이드 무바라크"를 속삭인다면, 그 말에는 어떤 정치적 구호보다 강한 힘이 담겨 있을 것이다.
전쟁은 명절을 빼앗을 수 있어도, 인간이 서로에게 건네는 그 작은 인사만큼은 끝내 지울 수 없다.
새 글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새 글이 올라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