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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를 미워할 수 있죠?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 200명의 KKK 단원을 변화시킨 흑인 음악가, 대릴 데이비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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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나를 미워할 수 있죠?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 200명의 KKK 단원을 변화시킨 흑인 음악가, 대릴 데이비스 이야기

흑인 블루스 음악가 대릴 데이비스는 30년간 KKK 단원들과 직접 만나 대화하며, 200명 이상이 스스로 백색 가운을 벗게 만들었습니다. 증오에 대한 그의 무기는 폭력도 분노도 아닌, 단 하나의 질문이었습니다 — "어떻게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할 수 있습니까?"

2026년 5월 4일4분 읽기

열 살 소년이 받은 첫 번째 돌

1968년, 메릴랜드주. 열 살짜리 흑인 소년 대릴 데이비스(Daryl Davis)는 보이스카우트 행진에 참가하고 있었습니다. 깃발을 들고 행진하는 평범한 오후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길가에서 돌과 캔이 날아왔습니다. 소년은 처음에 무슨 일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행렬에서 유일한 흑인은 자기뿐이었습니다.

그 돌은 자신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 부모에게 이야기하자, 부모는 조심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세상에는 네 피부색 때문에 너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단다." 열 살 소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그의 머릿속에 하나의 질문이 새겨졌습니다.

"어떻게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할 수 있을까?"

이 단순한 질문은 그의 인생 전체를 관통하는 사명이 되었습니다.


음악이 열어준 문

대릴은 음악에 빠져들었습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특히 로큰롤과 블루스에 매료되었습니다. 척 베리, 제리 리 루이스, 리틀 리처드 — 흑인과 백인이 함께 만들어낸 음악의 뿌리를 따라가며, 그는 음악 안에서 인종의 벽이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성인이 된 대릴은 프로 뮤지션이 되어 전국 각지의 바와 클럽에서 연주했습니다. 1983년, 메릴랜드주의 한 시골 라운지에서 연주를 마친 뒤, 한 백인 남성이 다가왔습니다.

"정말 대단한 피아노 실력이군요. 흑인이 이렇게 잘 치는 건 처음 봅니다."

어색한 칭찬이었지만, 대릴은 미소를 지으며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제리 리 루이스의 피아노 스타일이 사실 흑인 블루스에서 왔다는 이야기를 나누며, 두 사람은 함께 술을 마셨습니다. 대화가 무르익자, 남자는 고백했습니다.

"사실 저는 KKK 단원입니다."

대릴은 놀랐지만 자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궁금해졌습니다. 왜? 왜 이 사람은 방금 자신과 웃으며 술을 마시면서, 동시에 흑인을 증오하는 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것일까?

그날 밤, 두 사람은 전화번호를 교환했습니다.


적의 거실에 앉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KKK 단원과의 만남을 피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대릴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그는 의도적으로 KKK의 지도자들을 찾아가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대 초, 그는 메릴랜드주 KKK의 그랜드 드래곤(지부장)인 로저 켈리(Roger Kelly)에게 연락했습니다. 흑인에 대한 책을 쓰고 있다며 인터뷰를 요청한 것입니다. 처음에 켈리는 경계했지만, 만남에 응했습니다.

첫 만남에서 켈리는 권총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대릴의 흑인 비서는 문 앞에서 벌벌 떨었습니다. 하지만 대릴은 침착하게 앉아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설득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질문했습니다.

"왜 나를 미워합니까? 우리는 지금 같은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한 번의 만남이 두 번이 되고, 세 번이 되었습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하고, 함께 식사하고, 음악을 듣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켈리는 점점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자신이 평생 배운 것 — 흑인은 열등하고, 위험하고, 다르다는 것 — 이 눈앞의 이 남자와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느 날, 로저 켈리는 자신의 KKK 가운과 두건을 접어서 대릴에게 건넸습니다.

"더 이상 이것이 필요 없습니다."


200벌의 가운

대릴 데이비스는 이후 30년간 같은 일을 반복했습니다. 전직 네오나치, 백인 우월주의자, KKK의 고위 간부들을 직접 만나 대화했습니다. 때로는 위험한 상황도 있었습니다. 총구 앞에 선 적도, 폭행을 당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200명 이상의 KKK 단원과 백인 우월주의자가 스스로 단체를 떠났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가운과 두건을 대릴에게 건네며 과거와 결별했습니다. 대릴의 집에는 이 가운들이 쌓여갔습니다 — 증오가 변화한 증거로서.

그 중에는 임페리얼 위저드(KKK 최고 지도자급) 출신도 있었고, 대릴의 결혼식에서 들러리를 선 전직 KKK 단원도 있었습니다.


"적과 대화할 수 없다면, 누구와 대화할 수 있습니까?"

대릴의 방식에 대해 비판도 있었습니다. 일부 흑인 활동가들은 "왜 인종차별주의자들을 교육하는 것이 흑인의 책임이 되어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의 안전을 걱정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대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이것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제가 선택한 길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만큼은 확신합니다 — 테이블에 앉아 대화하면, 결국 공통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공통점을 발견하면, 차이점은 덜 중요해집니다. 그리고 차이점이 덜 중요해지면, 증오는 설 곳을 잃습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적과 대화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변화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단지 승리를 원하는 것입니다."


열 살 소년의 질문에 대한 답

2024년 현재, 대릴 데이비스는 7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강연하고, 대화하고, 음악을 연주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Accidental Courtesy (2016)로 제작되어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TEDx 강연은 수백만 뷰를 기록했습니다.

그의 집 한쪽 방에는 수십 벌의 흰색 KKK 가운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트로피가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 살 때 돌을 맞으며 품었던 질문 — "어떻게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미워할 수 있을까?" — 에 대릴은 인생 전체를 걸어 답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를 몰랐기 때문에 미워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그들을 알아가기로 했습니다."


증오의 반대말은 사랑이 아닙니다. 증오의 반대말은 이해입니다. 그리고 이해는 항상, 대화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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