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우리를 망가뜨렸다면, 봉사가 우리를 다시 세울 것이다" — 전우를 잃은 해병대원 제이크 우드와 '팀 루비콘'의 이야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돌아온 두 해병대원이 재난 현장에서 참전용사의 존재 이유를 다시 찾았습니다. 한 명은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었지만, 남은 전우가 만든 조직은 20만 명의 참전용사를 다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전쟁이 우리를 망가뜨렸다면, 봉사가 우리를 다시 세울 것이다"
전우를 잃은 해병대원 제이크 우드, 그리고 20만 참전용사를 일으킨 '팀 루비콘' 이야기
1. 전쟁에서 돌아온 두 해병대원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제이크 우드(Jake Wood)**와 **클레이 헌트(Clay Hunt)**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함께 전투를 치른 전우였습니다. 두 사람 모두 미 해병대(US Marine Corps) 출신이었고, 두 사람 모두 전쟁이 남긴 깊은 상처를 안고 본국에 돌아왔습니다.
제이크는 2005년 이라크 팔루자 전투에 투입되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복무했습니다. 클레이 역시 2007년 이라크 안바르 지역과 아프가니스탄에 배치되어 치열한 교전을 경험했습니다. 클레이는 전투 중 손목 부근에 저격수의 총탄을 맞아 퍼플 하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훈장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해주지 못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습니다. 클레이는 특히 심각했습니다. 그는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알코올에 의존했으며, 재향군인부(VA)의 관료적 의료 체계 속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점점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제이크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전장에서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 옆에 있는 전우를 지키는 것. 그런데 고국에 돌아오자 그 목적이 사라졌습니다. 아드레날린도, 임무도, 동료도 없는 일상은 그에게 또 다른 전쟁이었습니다.
2. 아이티 지진 — "우리가 갈 수 있다"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에 규모 7.0의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23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수도 포르토프랭스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CNN 화면을 통해 무너진 건물과 구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미국 전역에 생중계되었습니다.
제이크 우드는 TV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저기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전투 지역에서 활동하는 훈련을 받았다. 재난 현장이 전장과 뭐가 다르지?"
제이크는 클레이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이티에 가자." 클레이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언제 출발하지?"
두 사람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함께 갈 전우들을 모았습니다. 사흘 만에 8명의 참전용사와 의료진이 모였고,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로 향했습니다. 공식적인 구호단체도 아니었고, 예산도 없었으며, 조직 이름조차 급하게 지었습니다 — 팀 루비콘(Team Rubicon).
"루비콘"이라는 이름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너며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을 내린 것에서 따왔습니다. 제이크에게 아이티행은 바로 그런 결단이었습니다.
아이티에서 이들은 2주 동안 활동했습니다. 무너진 건물 밑에서 사람을 꺼내고, 응급 의료 처치를 했으며, 구호물자를 분배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제이크와 클레이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악몽이 줄었습니다. 손이 떨리지 않았습니다. 밤에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전장에서 느꼈던 그 '목적의식'이 재난 현장에서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사람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임무. 그것이 전쟁의 기술로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역설적인 해답이었습니다.
3. 클레이의 죽음 — 그리고 남은 자의 약속
아이티에서 돌아온 후, 두 사람은 팀 루비콘을 정식 비영리단체로 발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칠레 지진, 미국 남부 토네이도 등 재난이 있을 때마다 참전용사들을 모아 현장에 투입했습니다.
그러나 클레이 헌트의 어둠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011년 3월 31일, 클레이 헌트는 텍사스 휴스턴의 자택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8세였습니다.
소식을 들은 제이크는 무너졌습니다. 아이티에서 함께 웃으며 사람들을 구했던 전우. 서로의 악몽을 이해해주었던 유일한 존재. 그가 떠났습니다.
"클레이를 구하지 못했다. 하지만 클레이 같은 사람이 더 이상 죽지 않게 할 수는 있다."
제이크는 클레이의 죽음을 단순한 비극으로 묻어두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회에 증언하며, 재향군인부의 정신건강 의료 체계가 얼마나 부실한지를 알렸습니다. 클레이가 도움을 요청했지만 시스템의 틈 사이로 빠져나갔다고. 수개월씩 걸리는 예약, 약 처방에만 의존하는 치료, 진심으로 대화해주는 사람이 없는 체계 — 이 모든 것이 클레이를 죽였다고.
2015년 2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클레이 헌트 SAV(Suicide Prevention for America's Veterans)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이 법은 참전용사 자살 예방 프로그램의 외부 평가, 정신건강 전문가 채용 확대, 퇴역 후 1년간 무료 정신건강 서비스 제공 등을 골자로 합니다.
클레이의 이름은 미국 연방법에 영원히 새겨졌습니다.
4. 팀 루비콘 — 20만 명의 참전용사가 다시 일어서다
클레이의 죽음 이후, 제이크는 팀 루비콘의 미션을 확장했습니다. 단순히 재난 구호만이 아니라, 참전용사들에게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었습니다.
허리케인 하비(2017), 허리케인 마이클(2018), 코로나19 팬데믹(2020), 허리케인 이언(2022) — 미국에 재난이 닥칠 때마다 팀 루비콘의 회색 티셔츠를 입은 참전용사들이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은 체계적인 군사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었기에, 혼란스러운 재난 현장에서 놀라운 효율로 활동했습니다.
2024년 기준, 팀 루비콘의 등록 봉사자는 2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들은 미국 내 1,000회 이상의 재난 구호 작전에 참여했으며, 국제 활동까지 포함하면 수백만 시간의 봉사가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숫자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팀 루비콘에 참여한 참전용사들의 자살 충동이 감소했습니다. 소속감을 되찾았습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대신, **"나는 아직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되찾았습니다.
제이크 우드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쟁이 우리를 망가뜨렸다면, 다른 사람을 위한 봉사가 우리를 다시 세울 것이다. 클레이는 그것을 아이티에서 처음 느꼈다. 나는 클레이의 이름으로 그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다."
5. 에필로그 — "그 녀석은 아직도 나와 함께 뛴다"
매년 팀 루비콘의 참전용사들은 클레이 헌트를 기리는 마라톤에 참가합니다. 제이크 우드도 달립니다. 그의 가슴에는 클레이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가 있습니다.
그가 달리는 동안, 옆에는 보이지 않는 전우가 함께 뜁니다. 팔루자의 먼지바람 속에서, 아이티의 무너진 건물 위에서,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에서 돌아와 길을 잃은 수십만 명의 참전용사에게 팀 루비콘이 건네는 메시지는 단 하나입니다:
"당신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다음 임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의 시작은, 2010년 어느 날 전화기 너머로 들렸던 클레이 헌트의 목소리였습니다.
"언제 출발하지?"
클레이 헌트(1982–2011).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이름 위에 세워진 법과 조직이 오늘도 전우들을 살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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