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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화의 노래를 남기고 갈게요" — 13년의 짧은 생, 매티 스테파넥이 남긴 심장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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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평화의 노래를 남기고 갈게요" — 13년의 짧은 생, 매티 스테파넥이 남긴 심장의 시

희귀 근육질환으로 13살에 세상을 떠난 소년 매티 스테파넥은, 휠체어 위에서 쓴 시집으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하트송(Heartsongs)'은 오늘날까지 수백만 명의 마음을 울리고 있습니다.

2026년 5월 27일4분 읽기

심장이 노래하는 소년

2001년, 미국의 유명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무대에 한 소년이 휠체어를 타고 올랐습니다. 산소 호흡기 튜브가 코에 연결되어 있었고, 몸은 또래 아이들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시를 읽기 시작하자, 스튜디오 안의 모든 사람이 눈물을 멈출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매티 J.T. 스테파넥(Mattie J.T. Stepanek). 1990년 7월 17일, 메릴랜드주에서 태어난 이 소년은 **이영양성 자율신경 미토콘드리아 근병증(Dysautonomic Mitochondrial Myopathy)**이라는 극히 희귀한 유전 질환을 안고 세상에 왔습니다.


네 아이 중 유일한 생존자

매티의 어머니 제니 스테파넥(Jeni Stepanek) 역시 같은 질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니는 성인이 된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병을 알게 되었고, 이미 네 아이를 낳은 뒤였습니다. 매티의 세 형제자매 — 케이티, 스티비, 제이미 — 는 모두 이 질환으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케이티는 태어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스티비는 6개월, 제이미는 겨우 세 살에 눈을 감았습니다.

매티는 네 아이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지만, 의사들은 그 역시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 살 때 이미 호흡기를 달아야 했고, 휠체어 없이는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니는 아들에게 한 가지를 가르쳤습니다.

"네 안에는 **하트송(Heartsong)**이 있어. 모든 사람에게는 심장이 부르는 노래가 있단다. 네 하트송을 찾고, 그것을 세상과 나눠라."


세 살에 시작된 시, 열한 살에 베스트셀러

매티는 세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어머니가 받아 적었고, 글씨를 배운 뒤에는 스스로 노트에 적었습니다. 그의 시는 놀라울 정도로 깊었습니다. 죽음과 이웃한 일상을 살면서도, 그의 글에는 분노도 원망도 없었습니다. 대신 평화, 사랑, 희망, 용서에 대한 이야기가 빼곡했습니다.

2001년, 매티의 첫 시집 **『Heartsongs』**가 출간되었습니다. 열한 살 소년의 시집은 출간 즉시 입소문을 탔고,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위에 올랐습니다. 이후 출간된 Journey Through Heartsongs, Hope Through Heartsongs, Celebrate Through Heartsongs, Loving Through Heartsongs 등 총 다섯 권의 시집 모두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시집은 전 세계에서 수백만 부가 팔렸습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나는 평화를 위한 사절이 되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작은 것이지만, 작은 것이 모이면 세상이 바뀐다."


지미 카터와의 우정

매티의 시를 읽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깊은 감동을 받고 직접 매티에게 연락했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 차이는 65세가 넘었지만, 평화에 대한 같은 열망으로 빠르게 친구가 되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훗날 매티를 **"내 인생에서 만난 가장 비범한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매티는 카터의 초대로 해비타트 운동에 참여했고, 카터 센터 행사에서 시를 낭독했습니다. 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열두 살 소년에게 인생의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은, 매티가 어떤 존재였는지를 말해줍니다.


평화의 대사, 세상을 향해 말하다

매티는 단순히 시를 쓰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래리 킹 라이브에 여섯 차례 출연했고, 오프라 윈프리 쇼, 굿모닝 아메리카 등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2003년에는 **근이영양증협회(MDA)**의 국가 친선대사로 임명되어 제리 루이스 텔레톤에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9·11 테러 이후, 온 나라가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을 때, 이 소년은 말했습니다:

"분노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분노 너머를 봐야 해요. 평화를 선택하는 건 약한 게 아니라, 가장 용감한 거예요."


13년의 짧은 생, 영원한 노래

2004년 6월 22일, 매티 스테파넥은 열세 살의 나이로 워싱턴 D.C. 인근 어린이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장례식에는 1,300명 이상이 참석했습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직접 추도사를 읽었고, 오프라 윈프리와 래리 킹이 헌사를 보냈습니다. 카터 전 대통령은 눈물 속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티는 내가 아는 가장 비범한 인간이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평생 찾아 헤매는 삶의 의미를, 이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매티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 제니는 아들의 유지를 이어 매티 J.T. 스테파넥 평화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또한 그의 이름을 딴 공원이 메릴랜드주 록빌에 조성되었고, **매티 스테파넥 평화공원(Mattie J.T. Stepanek Park)**은 오늘날에도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울리는 심장의 노래

매티 스테파넥의 삶은 13년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의 대부분은 병원 침대와 휠체어 위에서 보냈습니다. 세 형제자매를 잃었고, 자신도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원망이 아니라 시였고, 분노가 아니라 평화였습니다.

매티는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하트송이 있다. 그것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고,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를 느끼게 해준다. 당신의 하트송을 찾아라. 그리고 그것을 세상에 들려주어라."

13년의 짧은 생이었지만, 그의 심장이 부른 노래는 아직도 수백만 명의 가슴에서 울리고 있습니다. 매티가 세상에 남긴 것은 다섯 권의 베스트셀러, 하나의 평화 재단, 그리고 영원히 멈추지 않는 하트송이었습니다.

때로는 가장 연약한 존재가 가장 강한 메시지를 남깁니다. 매티 스테파넥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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