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인생을 잡으러 온 게 아니야, 네 친구가 되러 왔어" — 현대판 노예에서 노숙자로, 그리고 가장 깊은 우정을 남긴 남자, 덴버 무어 이야기
루이지애나 면화밭에서 사실상의 노예로 자란 덴버 무어는 수십 년간 노숙자로 살았습니다. 부유한 미술상 론 홀과의 예기치 못한 만남이 두 사람의 인생, 그리고 한 도시를 완전히 바꿔놓은 실화입니다.
면화밭의 소년, 이름조차 빼앗긴 삶
1937년, 루이지애나주 레드 리버 패리시. 덴버 무어(Denver Moore)는 소작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소작인'이라는 단어는 그의 삶을 너무 점잖게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남북전쟁이 끝난 지 70년이 넘었지만, 루이지애나 시골의 흑인 소작농 가정은 사실상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덴버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습니다. 글을 읽거나 쓸 줄 몰랐습니다. 새벽부터 해질녘까지 면화를 따는 것이 그의 유년기 전부였습니다. 소작농의 빚은 갚을 수 없게 설계되어 있었기에, 그는 태어날 때부터 "주인"의 땅에 묶여 있었습니다. 현대판 노예제(sharecropping peonage)의 한복판이었습니다.
청년이 된 덴버는 결국 그 땅에서 도망쳤습니다. 화물 열차에 올라타고, 도시에서 도시로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교육도 없고, 신분도 없고, 가진 것이라곤 분노뿐인 남자에게 세상은 친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텍사스 주 포트워스의 거리에서 노숙자가 되었고, 그 생활은 무려 30년 가까이 이어졌습니다.
노숙자 사회에서 덴버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으로 통했습니다. 거대한 체구, 불같은 성질, 누구도 가까이 오지 못하게 만드는 눈빛. 그는 사람을 믿지 않았습니다. 한 번도 믿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미술상의 아내가 꾼 꿈
포트워스의 반대편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었습니다. **론 홀(Ron Hall)**은 성공한 미술상이었습니다. 백만 달러짜리 그림을 사고파는 남자. 고급 양복을 입고 세계를 누비는 남자. 그에게 노숙자 쉼터는 다른 행성의 이야기였습니다.
그의 아내 **데보라 홀(Deborah Hall)**은 달랐습니다. 깊은 신앙을 가진 데보라는 포트워스 **유니온 가스펠 미션(Union Gospel Mission)**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고, 남편도 함께 오기를 원했습니다. 론은 마지못해 따라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데보라는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꿈을 꿨어. 가난하고 현명한 한 남자가 이 도시를 바꿀 거라는 꿈이었어."
론은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하지만 데보라는 진지했습니다. 그녀는 그 '꿈속의 남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려는 거라면, 관두시오"
쉼터에서 론은 덴버를 처음 보았습니다. 거대하고, 무섭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는 남자. 론은 다가가 인사를 건넸지만, 덴버는 그를 차갑게 밀어냈습니다.
몇 주, 몇 달이 흘렀습니다. 론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매주 쉼터에 와서 음식을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조용히 덴버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덴버는 그를 무시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덴버가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그 유명한 말이었습니다.
"나는 네가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catch and release)인지 궁금했어. 부자들이 가끔 그렇게 하거든. 노숙자를 친구 삼은 척하다가, 흥미가 식으면 다시 놓아버리지. 만약 네가 나를 잡았다가 놓을 거라면, 그냥 처음부터 하지 마."
이 한마디는 론의 가슴을 관통했습니다. 덴버는 평생 버림받아 온 사람이었습니다. 또 한 번 버림받느니 차라리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았던 것입니다.
론은 대답했습니다.
"나는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데보라의 죽음, 그리고 약속
우정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싹트기 시작한 1990년대 후반,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데보라가 간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두 남자를 이어준 다리였던 데보라가 쓰러졌습니다. 론은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평생 다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한 적 없다고 스스로 말하던 덴버가, 매일 병원에 찾아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꽃을 들고, 아무 말 없이 데보라의 침대 곁에 앉았습니다.
2000년 11월 1일, 데보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식에서 론은 울며 서 있었고, 덴버가 그 옆에 묵묵히 서 있었습니다.
데보라의 죽음 이후, 많은 사람들은 론이 쉼터 봉사를 그만둘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내의 프로젝트였으니까요. 하지만 론은 쉼터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덴버 역시 론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덴버가 말했습니다.
"미스 데비(데보라)가 나에게 가르쳐준 게 있어.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보물이라는 거야."
"같은 종류의 다름" — 세상을 바꾼 우정
론과 덴버는 함께 전국을 돌며 노숙자 문제에 대해 강연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인 백만장자와 흑인 노숙자가 나란히 무대에 서는 광경은 사람들을 멈추게 했습니다.
2006년, 두 사람은 회고록 ***"Same Kind of Different as Me"***를 출간했습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고, 150주 이상 베스트셀러 목록에 머물렀습니다. 전 세계에서 100만 부 이상이 팔렸습니다.
2017년에는 그렉 키니어와 르네 젤위거 주연으로 동명의 영화가 제작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론과 덴버에게 정말 중요했던 것은 책 판매 부수가 아니었습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에 감동받은 개인과 기업들이 수백만 달러를 노숙자 지원 단체에 기부했고, 포트워스 유니온 가스펠 미션은 대대적인 확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덴버의 또 다른 재능
놀라운 일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글을 읽지도 쓰지도 못했던 덴버에게 숨겨진 재능이 있었습니다. 그림이었습니다. 론이 미술상이었기에 덴버에게 미술 도구를 가져다 주었고, 덴버는 붓을 잡자마자 강렬하고 독특한 그림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작품은 갤러리에 전시되었고, 판매 수익은 모두 노숙자 지원에 기부되었습니다.
면화밭의 소작농 소년이, 70대에 화가가 된 것입니다.
마지막 인사
2012년 3월 28일, 덴버 무어는 7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론 홀은 그의 곁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물고기를 잡았다가 놓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론은 이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덴버를 구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입니다. 덴버가 나를 구했습니다. 나는 부자였지만 가난했고, 덴버는 가난했지만 부자였습니다."
두 남자 사이에는 인종도, 계급도, 교육도, 재산도 모든 것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데보라가 꿈에서 본 것처럼, 가난하고 현명한 한 남자가 정말로 도시를 바꿨고, 부유하지만 공허했던 한 남자의 영혼을 채웠습니다.
덴버 무어가 남긴 말 중 가장 유명한 한 마디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노숙자야. 그냥 집으로 가는 길 위에 있는 것뿐이지."
론 홀은 현재도 노숙자 인권 운동과 강연을 이어가고 있으며, 덴버 무어의 이름으로 된 장학금과 재단이 포트워스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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