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 불치병 치료제를 직접 만들어낸 아버지, 존 크로울리 이야기
1998년, 존 크로울리는 두 아이가 희귀 난치병 '폼페병' 진단을 받자 의학 지식 하나 없이 제약회사를 세워 치료제를 개발해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아버지의 사랑이 의학의 역사를 바꾼 실화입니다.
"내 아이들이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불치병 치료제를 직접 만들어낸 아버지, 존 크로울리 이야기
평범한 가정에 찾아온 선고
1998년, 미국 뉴저지 주에 사는 존 크로울리(John Crowley)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30대 초반의 젊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내 에일린(Aileen)과 함께 세 아이를 키우며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행복은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둘째 딸 메건(Megan)이 생후 15개월 되던 날, 의사로부터 **폼페병(Pompe disease)**이라는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폼페병은 근육을 서서히 파괴하는 유전 질환으로, 당시 치료제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의사의 말은 냉혹했습니다.
"이 병에 걸린 영아형 환자의 대부분은 두 살 이전에 사망합니다."
얼마 뒤 셋째 아들 패트릭(Patrick)에게도 같은 진단이 내려졌습니다. 두 아이 모두 근육이 급격히 약해지며, 심장이 비대해지고 있었습니다. 존과 에일린은 바닥이 꺼지는 절망을 느꼈습니다.
아버지가 선택한 불가능한 길
존 크로울리는 의사도, 과학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두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볼 수만은 없었습니다. 그는 매일 밤 아이들을 재운 뒤 폼페병에 관한 의학 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편의 연구 자료를 독학으로 파고들며, 전 세계에서 이 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한 명씩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던 중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의 생화학자 윌리엄 캔필드(Dr. William Canfield) 박사와 **첸유안-차이 박사(Dr. Yuan-Tsong Chen)**를 만나게 됩니다. 이들은 폼페병의 원인인 GAA 효소 결핍을 대체할 수 있는 **효소 대체 요법(Enzyme Replacement Therapy, ERT)**의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었지만, 자금과 지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였습니다.
존은 결심했습니다. 직접 제약회사를 세우겠다고.
2000년, 그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노바자임 파마슈티컬스(Novazyme Pharmaceuticals)**라는 바이오텍 스타트업을 설립했습니다. 의학 학위도, 제약 경험도 없는 경영학도가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뛰어든 것입니다. 주변에서는 무모하다고 했고, 투자자들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하지만 존은 아이들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시간과의 사투
메건은 이미 호흡 보조기 없이는 숨을 쉬기 어려웠고, 패트릭도 휠체어에 의존하는 상태였습니다. 존은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고, 밤에는 연구진과 함께 실험 결과를 검토했습니다.
기적처럼, 노바자임의 연구는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임상 시험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규모 제약회사의 자원이 필요했습니다. 2001년, 존은 극적인 결단을 내립니다. 자신이 세운 회사를 **겐자임(Genzyme)**이라는 대형 바이오제약 회사에 매각한 것입니다.
자존심도, 경영권도 내려놓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단 하나, 아이들이 살 수 있는 약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존은 겐자임에 합류하여 치료제 개발 프로그램의 수석 부사장으로 일하며, 임상 시험을 진두지휘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윤리적 갈등이 생겼습니다. 자신의 아이들을 임상 시험 대상에 포함시키는 것은 **이해충돌(conflict of interest)**로 비판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존은 자신의 직책에서 물러나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투명하게 상황을 공개하고 독립적인 윤리 위원회의 심사를 받았습니다.
기적의 순간
2003년, 메건과 패트릭은 마침내 **효소 대체 치료(ERT)**의 임상 시험에 참여하게 됩니다. 메건은 당시 6살, 패트릭은 4살이었습니다. 의사들이 예측한 수명을 이미 훌쩍 넘긴 나이였습니다.
첫 투약이 시작되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이들의 심장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근육의 퇴행이 멈췄습니다. 완치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습니다.
2006년 4월, 미국 FDA는 폼페병 치료제 **마이오자임(Myozyme)**을 정식 승인했습니다. 세계 최초의 폼페병 치료제였습니다.
메건과 패트릭은 살았습니다.
그 후의 이야기
메건은 휠체어를 타고 있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노트르담 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 진학했습니다. 패트릭 역시 대학에 진학하여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두 아이 모두 두 살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던 의사의 선고를 뒤엎고, 20대의 청년으로 성장했습니다.
존 크로울리의 이야기는 2010년 영화 **《특별한 용기(Extraordinary Measures)》**로 제작되어 브렌단 프레이저와 해리슨 포드가 출연했습니다. 존은 이후에도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에 헌신하며, 여러 바이오제약 회사의 CEO를 역임했습니다.
존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과학자가 아닙니다. 저는 그냥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라면 누구든 했을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이가 죽어가는 것을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만은 제가 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단지 한 가족의 기적이 아닙니다. 마이오자임은 현재 전 세계 수천 명의 폼페병 환자들에게 투약되고 있으며, 한 아버지의 절박한 사랑이 의학의 역사를 바꾼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포기할 수 없는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듭니다. 존 크로울리는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아버지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 당신의 아이를 위한 싸움을 멈추지 마세요." — 존 크로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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