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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 참전용사 아들을 잃고 법을 바꾼 어머니, 수전 셀키와 클레이 헌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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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 참전용사 아들을 잃고 법을 바꾼 어머니, 수전 셀키와 클레이 헌트 이야기

이라크·아프가니스탄 참전용사 클레이 헌트는 전쟁 후 PTSD와 싸우다 2011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어머니 수전 셀키는 아들의 이름을 딴 '클레이 헌트법'을 통과시켜, 수만 명의 참전용사가 정신건강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었습니다.

2026년 10월 21일3분 읽기

"내 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해주세요"

참전용사 클레이 헌트를 잃고, 법을 바꾼 어머니 수전 셀키 이야기


전장의 영웅, 집으로 돌아온 소년

클레이턴 "클레이" 헌트(Clayton "Clay" Hunt, 1989–2011)는 텍사스 휴스턴 출신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청년이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기타를 치며,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웃게 만들던 소년. 그는 2007년, 열여덟 살의 나이에 미 해병대에 입대했습니다.

클레이는 이라크 안바르 주에 배치되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헬만드 주로 재배치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저격수의 총탄에 손목을 관통당하는 부상을 입었고, 퍼플하트 훈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진짜 상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습니다. 함께 싸우던 전우들이 눈앞에서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그의 마음속에는, 전장보다 더 잔혹한 전쟁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 PTSD

2009년, 명예 제대 후 집으로 돌아온 클레이는 외견상 멀쩡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고, 갑작스러운 분노와 극심한 불안이 그를 잠식했습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였습니다.

클레이는 재향군인부(VA) 병원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VA 시스템은 폭발적으로 늘어난 참전용사 정신건강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약은 몇 주씩 밀렸고, 담당 치료사는 수시로 바뀌었습니다. 클레이는 어머니 수전 셀키(Susan Selke)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저는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런데 아무도 없었어요."

클레이는 절망 속에서도 다른 참전용사들을 돕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비영리 단체 '팀 루비콘'에 참여해 아이티 지진 구호 활동에 나섰고, 참전용사 봉사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남을 돕는 동안만큼은 자신의 고통을 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점점 꺼져갔습니다.


2011년 3월 31일

스물여섯 번째 생일을 불과 며칠 앞둔 2011년 3월 31일, 클레이 헌트는 텍사스 휴스턴의 자택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어머니 수전 셀키는 세상이 무너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아들은 전장에서 살아 돌아왔습니다. 퍼플하트를 받은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평화로워야 할 미국 땅 위에서 죽었습니다. 적의 총알이 아니라, 자국 시스템의 무관심이 아들을 죽인 것이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하루 평균 22명의 참전용사가 자살로 목숨을 잃고 있었습니다. 클레이는 그 스물두 명 중 하나였습니다.


비탄에서 행동으로

수전 셀키는 울음을 멈추고 일어섰습니다. 아들의 죽음이 단지 하나의 통계 숫자로 사라지는 것을 그녀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수전은 아들의 이야기를 언론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의회 청문회에 출석해 증언했고, 워싱턴 D.C.의 의원실 문을 하나하나 두드렸습니다. 그녀가 요구한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다른 어머니가 저와 같은 전화를 받지 않게 해주세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참전군인회(IAVA)와 함께 수전은 참전용사 정신건강 서비스 개선 법안을 추진했습니다. 이 법안의 이름은 클레이 헌트 SAV(Suicide Prevention for America's Veterans) 법이었습니다.


클레이 헌트법, 의회를 통과하다

2015년 2월 12일, '클레이 헌트 SAV 법'은 미국 상·하원을 만장일치로 통과했습니다. 미국 의회에서 만장일치란 사실상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공화당과 민주당이 첨예하게 대립하던 시기에, 이 법안만은 단 한 표의 반대도 없이 통과되었습니다.

2015년 2월 12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법안에 서명했습니다. 수전 셀키는 백악관 서명식에 초대받아, 아들의 사진을 가슴에 안고 그 자리에 섰습니다.

이 법은 다음을 규정했습니다:

  • VA 정신건강 프로그램에 대한 독립적 연례 평가 의무화
  • 참전용사 자살 예방을 위한 VA 웹사이트 구축
  • 정신건강 전문가 채용을 위한 대학 학자금 상환 프로그램
  • 커뮤니티 기반 정신건강 서비스와 VA 간의 연계 강화

클레이가 남긴 것

클레이 헌트법은 단순히 하나의 법률이 아닙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상처를 안고 돌아온 수십만 참전용사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라고 말해주는 국가의 약속이 되었습니다.

수전 셀키는 지금도 전국을 돌며 참전용사 자살 예방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강연에서 아들의 밝은 웃음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합니다.

"클레이는 전장에서 동료를 지키는 아이였어요. 이제는 제가 클레이의 전우들을 지킬 차례입니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사랑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이 수만 명의 생명을 지키고 있습니다. 클레이 헌트는 떠났지만, 그의 이름은 매일 누군가를 살리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17명의 미국 참전용사가 여전히 자살로 세상을 떠납니다. 클레이 헌트법은 그 숫자를 줄이기 위한 첫 걸음이었습니다. 만약 주변에 도움이 필요한 분이 계시다면, 미국 자살예방 핫라인 988, 또는 참전용사 위기상담 전화 1-800-273-8255(1번)로 연락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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