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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습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속에서 100명의 이웃을 보트로 구한 평범한 어부, 제시 세인트 아망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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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습니다" — 허리케인 카트리나 속에서 100명의 이웃을 보트로 구한 평범한 어부, 제시 세인트 아망 이야기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뉴올리언스를 덮쳤을 때, 케이준 어부 제시 세인트 아망은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자신의 작은 배를 몰고 침수된 거리로 나가 100명이 넘는 이웃들을 구했습니다. 정부의 구조가 오기까지 며칠이 걸렸지만, 그와 같은 "케이준 해군" 자원봉사자들이 먼저 움직였기에 수천 명이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2026년 10월 22일4분 읽기

"저 아이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속에서 100명의 이웃을 구한 평범한 어부, 제시 세인트 아망 이야기


2005년 8월 29일, 물이 밀려왔다

2005년 8월 29일 아침, 카테고리 5급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걸프 연안을 강타했습니다. 뉴올리언스의 제방 여러 곳이 무너졌고, 도시의 80퍼센트가 물에 잠겼습니다. 수위는 어떤 지역에서 지붕 높이까지 올라왔습니다.

전기가 끊기고, 전화가 먹통이 되고, 도로가 사라졌습니다. 연방재난관리청(FEMA)의 공식 구조 헬기와 보트가 도착하기까지는 며칠이 걸렸습니다. 그 며칠 사이, 지붕 위에 올라가 손을 흔드는 사람들, 다락방에 갇혀 벽을 두드리는 가족들, 물 위에 떠다니는 아이를 안은 어머니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며칠 사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스스로 배를 끌고 나온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시 세인트 아망이라는 남자

루이지애나주 세인트 버나드 패리시에 사는 제시 세인트 아망(Jesse St. Amant)은 평생 늪지대에서 물고기를 잡고, 새우를 잡고, 게를 잡아 생계를 이어온 케이준 어부였습니다. 그의 아버지도 어부였고, 할아버지도 어부였습니다. 그에게 배는 직업이었고 삶 그 자체였습니다.

카트리나가 들이닥쳤을 때 제시는 가족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대피시켰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16피트짜리 평저선(flat-bottom boat)에 올라탔습니다.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었습니다. 침수된 동네 한가운데였습니다.

"거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TV가 안 나오니까 누가 알려주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이 동네를 알거든요. 어디에 누가 사는지, 어디에 노인들이 혼자 사는지, 어디에 아이가 많은 집이 있는지. 그냥 갈 수가 없었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물 위의 며칠

제시가 처음 배를 몰고 들어간 거리에서 본 것은 지옥이었습니다. 지붕 위에 올라간 노부부가 손을 흔들고 있었고, 2층 창문을 깨고 나온 젊은 어머니가 아기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있었습니다. 어떤 집에서는 다락방 안에서 두드리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제시는 도끼를 들고 지붕을 뚫었습니다. 안에 갇혀 있던 가족 네 명이 기어 나왔습니다. 아이 둘은 울고 있었고, 아버지는 탈수 상태였습니다.

배는 작았습니다. 한 번에 대여섯 명밖에 태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시는 사람들을 고지대나 고가도로 위까지 실어다 놓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또 돌아갔습니다.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가솔린이 떨어지면 떠내려온 차량에서 연료를 빼냈습니다. 밤이 되면 손전등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을 운항했습니다.

그는 3일 동안 쉬지 않고 배를 몰았습니다.

구한 사람의 수는 100명이 넘었습니다.


"케이준 해군" — 시키지 않아도 나타난 사람들

제시 세인트 아망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루이지애나, 텍사스, 미시시피 전역에서 자신의 배를 트레일러에 실어 뉴올리언스로 향한 민간인 어부, 사냥꾼, 평범한 시민들이 수백 명에 달했습니다. 언론은 이들을 **"케이준 해군(Cajun Navy)"**이라 불렀습니다.

공식 군복도 없고, 지휘 체계도 없고, 급여도 없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경찰의 바리케이드를 무시하고 침수 지역으로 배를 몰았다가 제지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미국 의회 보고서와 다수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 자발적 민간 보트 구조 활동은 카트리나 당시 약 10,000명 이상의 생명을 구한 것으로 추산됩니다. 정부 구조대가 본격 가동되기 전, 가장 결정적인 72시간 동안 이들이 물 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뒤에 남은 것

제시 세인트 아망의 집도 카트리나에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그의 어선도 큰 손상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에서 한 번도 자신의 피해를 먼저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잃은 건 집이에요. 그 사람들이 잃을 뻔한 건 목숨이었어요. 비교가 안 되잖아요."

케이준 해군의 전통은 카트리나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016년 루이지애나 대홍수, 2017년 허리케인 하비가 텍사스 휴스턴을 덮쳤을 때도 민간 보트 구조대가 자발적으로 조직되어 수천 명을 구했습니다. 이제 케이준 해군은 공식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어 재난 시 체계적으로 출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 시작에는 제시 세인트 아망 같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도 가라고 하지 않았는데 간 사람들. 자격증도, 명령서도, 보상의 약속도 없이, 그저 "저 사람들을 그냥 두고 갈 수 없다"는 마음 하나로 배를 몬 사람들.


감동의 본질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영웅은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영웅은 특별한 순간에 '그냥 가지 않기로 결심한' 평범한 사람입니다.

제시 세인트 아망은 자신을 영웅이라 부르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냥 배를 가진 남자였어요. 그리고 물에 빠진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게 다예요."

그게 다라고 말하지만, 그 "다"가 100명의 목숨이었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케이준 해군은 미국 재난 대응 역사에서 민간 자원봉사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2005년 그 물 위에서 배를 몬 어부들의 이름 대부분은 기록에 남지 않았지만, 그들이 구한 사람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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