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터치다운은 이 아이들이야" — 풋볼 스타의 꿈을 버리고 2,000명의 아이를 키운 남자, 존 크로일 이야기
NFL 드래프트를 거부하고 앨라배마 숲속에 아이들의 집을 세운 전 대학 풋볼 스타 존 크로일. 그는 1974년부터 50년간 학대·방임·버림받은 2,000명 넘는 아이들에게 가족이 되어주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진 청년, 모든 것을 내려놓다
1974년, 앨라배마 대학교 크림슨 타이드의 수비 엔드 **존 크로일(John Croyle)**은 미국 대학 풋볼에서 가장 빛나는 별 중 하나였습니다. 전설적인 감독 베어 브라이언트(Bear Bryant) 밑에서 뛰며 두 차례 SEC 챔피언십에 기여했고, NFL 팀들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습니다. 196cm의 장신에 폭발적인 운동 능력을 갖춘 그에게 프로 계약은 눈앞에 놓인 확실한 미래였습니다.
그러나 존은 NFL의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그가 선택한 길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코치, 저는 아이들의 집을 짓겠습니다"
대학 시절, 존은 앨라배마 주의 아동 복지 시스템을 접하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학대받고, 방임되고, 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들이 기관과 위탁 가정을 전전하며 사랑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라는 현실. 그는 대학 2학년 때 이미 마음속에 결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졸업 후, 존은 베어 브라이언트 감독을 찾아갔습니다.
"코치, 저는 프로에 가지 않겠습니다. 대신 아이들을 위한 목장을 세우려고 합니다."
브라이언트 감독은 잠시 침묵한 뒤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내 밑에서 뛴 선수 중 가장 미친 녀석이야. 하지만 만약 누군가 해낼 수 있다면, 그건 너다."
그리고 감독은 자신의 이름과 인맥을 걸고 존의 꿈을 돕기 시작했습니다.
빅 오크 랜치(Big Oak Ranch)의 탄생
1974년, 존 크로일은 앨라배마주 가든(Gadsden) 근처 언덕 위 120에이커의 땅에 **빅 오크 랜치(Big Oak Ranch)**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허름한 건물 하나와 아이 몇 명으로 시작했습니다. 자금도 없었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있는 것이라곤 거대한 몸과 더 거대한 믿음뿐이었습니다.
빅 오크 랜치의 원칙은 단순했습니다:
- 모든 아이에게 가정을 준다. 시설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산다.
- 모든 아이에게 "너는 사랑받고 있다"고 말한다. 매일, 반복적으로.
- 아이가 떠날 준비가 될 때까지, 절대 내보내지 않는다.
존은 각 가정집에 '코티지 부모(cottage parents)'라 불리는 상주 부부를 두어, 6~8명의 아이들과 진짜 가족처럼 살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은 함께 식사하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숙제를 했습니다.
2,000개의 이름, 2,000개의 이야기
빅 오크 랜치에 온 아이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가슴을 찢었습니다.
한 소녀는 친아버지에게 수년간 학대를 당한 뒤 쓰레기봉투에 옷가지를 담아 랜치에 도착했습니다. 처음 며칠간 한마디도 하지 않던 그 아이는, 존이 매일 밤 문 앞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들려주자 서서히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한 소년은 마약에 중독된 부모 밑에서 6살 때부터 동생들을 돌보다 결국 아동보호국에 의해 분리되었습니다. 형제가 뿔뿔이 흩어질 위기에 처했을 때, 존은 형제 전원을 함께 받아들였습니다.
"아이를 분리하는 것은 또 다른 학대입니다." 존은 항상 이렇게 말했습니다.
50년 동안 빅 오크 랜치를 거쳐 간 아이는 2,000명이 넘습니다. 그중 많은 이들이 대학을 졸업했고, 군인이 되었고, 교사가 되었고, 간호사가 되었고, 자기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 하나 — 빅 오크 랜치 출신 아이들의 이혼율은 미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습니다. 존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사랑받아 본 사람만이 사랑하는 법을 압니다."
"내 인생 최고의 터치다운"
1995년, 존의 아들 **브로디 크로일(Brodie Croyle)**이 고등학교 풋볼 스타로 떠올랐고, 이후 앨라배마 대학교에서 쿼터백으로 활약하다 **캔자스시티 치프스(Kansas City Chiefs)**에 드래프트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꿈꾸었지만 걷지 않은 그 길을 아들이 걸었습니다.
기자가 존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이 NFL에 간 것이 후회를 불러일으키지 않습니까?"
존은 웃으며 답했습니다.
"브로디의 터치다운은 멋지죠. 하지만 내 인생 최고의 터치다운은 밤에 울다 잠든 아이가 아침에 웃으며 일어나는 순간입니다. 그건 어떤 슈퍼볼 반지보다 값집니다."
세대를 잇는 사랑
2016년, 존 크로일은 랜치의 운영을 아들 브로디에게 넘겼습니다. NFL 은퇴 후 브로디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빅 오크 랜치의 대표가 되었습니다. 프로 풋볼 선수의 영광이 아니라, 아버지가 일생을 바친 아이들의 세계로 돌아온 것입니다.
브로디는 말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본 가장 위대한 선수입니다. 경기장이 아니라 삶의 경기장에서요."
오늘도 앨라배마 언덕 위의 빅 오크 랜치에서는 아이들이 뛰놀고 있습니다. 잔디밭 위를 달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사이로, 50년 전 한 청년이 내린 결단의 메아리가 들립니다.
NFL 계약서 대신 아이의 손을 잡은 날, 존 크로일은 역사상 가장 긴 터치다운을 시작했습니다. 그 터치다운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묻습니다. '얼마나 많은 아이를 구했나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저를 구한 건 그 아이들입니다.'" — 존 크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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