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겠습니다" — 홍수 속에서 낯선 아기를 구하고, 평생 딸로 키운 여성, 클라라 헤일 이야기
1969년, 할렘의 한 여성 클라라 헤일은 마약 중독 부모에게 버려진 아기를 품에 안았고, 그 뒤 40년간 1,000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집과 사랑을 주었습니다. "헤일 하우스"라 불린 그녀의 작은 아파트는 미국에서 가장 따뜻한 고아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 아이의 엄마가 되겠습니다"
— 1,000명의 버려진 아기를 품에 안은 할렘의 어머니, 클라라 "마더" 헤일 이야기
할렘의 작은 아파트, 그리고 한 여인의 심장
19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클라라 맥브라이드 헤일(Clara McBride Hale)**은 어린 시절부터 가난이 무엇인지 온몸으로 알았습니다. 아버지는 그녀가 아주 어릴 때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홀로 자녀들을 키우며 하숙집을 운영했습니다. 클라라는 어머니가 낯선 사람에게도 밥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결혼 후 뉴욕 할렘으로 이주한 클라라는 남편 토마스 헤일과 함께 세 자녀—네이선, 로레인, 케네스—를 키웠습니다. 그러나 1932년,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클라라는 27살의 나이에 홀로서기를 해야 했습니다. 청소부, 세탁부로 일하며 아이들을 먹이던 그녀는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내 아이들만 배고픈 게 아니구나."
위탁모로의 첫 발걸음
1940년대, 클라라는 정식으로 위탁모(foster parent) 자격을 얻었습니다. 할렘의 거리에는 부모에게 버려진 아이들이 넘쳤습니다. 가난, 알코올 중독, 가정폭력—이유는 다양했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차가운 거리 위에 혼자 남겨진 아이.
클라라는 자신의 작은 아파트 문을 열었습니다. 처음에는 한두 명이었습니다. 그러다 서너 명이 되고, 열 명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1940년부터 1968년까지 약 28년 동안 40명이 넘는 아이들을 자신의 집에서 직접 키웠습니다. 그들 모두에게 클라라는 "엄마"였습니다.
1968년, 클라라는 63세가 되었고, 마지막 위탁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서 은퇴를 결심했습니다. "이제 쉬어도 되겠지."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가만두지 않았습니다.
1969년, 운명을 바꾼 한 통의 전화
은퇴한 지 불과 몇 달 후, 딸 로레인이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엄마, 길모퉁이에서 한 여자가 아기를 안고 있는데, 마약에 취해서 아기를 떨어뜨릴 것 같아요."
로레인은 그 여성에게 다가가 어머니의 주소를 적어주었습니다. "이 주소로 가세요. 거기 계신 분이 도와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그 여성이 정말로 문 앞에 나타났습니다. 품에는 마약 금단 증상으로 온몸을 떨고 있는 갓난아기가 안겨 있었습니다. 클라라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아기를 받아 안았습니다.
"제가 이 아이의 엄마가 되겠습니다."
이것이 시작이었습니다.
헤일 하우스의 탄생
소문은 할렘 거리를 타고 퍼져나갔습니다. "127번가에 아기를 맡아주는 할머니가 있다." 마약 중독 어머니들이 하나둘 문을 두드렸습니다. 한 달 만에 아기가 22명이 되었습니다. 클라라의 5개 방짜리 아파트는 아기 울음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마약 중독 부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은 특별한 돌봄이 필요했습니다. 신생아 금단 증상(Neonatal Abstinence Syndrome)으로 경련을 일으키고, 밤새 울며, 먹기를 거부했습니다. 클라라는 그 아기들을 하루 종일 품에 안고 흔들어주었습니다. 밤에도 잠을 자지 않고 두세 명의 아기를 동시에 안아주었습니다.
1970년, 이 활동은 공식적으로 **"헤일 하우스(Hale House)"**라는 비영리단체로 등록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거의 모든 비용을 클라라가 자비로 충당했습니다. 이웃들이 분유를 가져다주었고, 교회에서 기저귀를 모아왔습니다.
대통령이 주목한 할렘의 어머니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연두교서(State of the Union Address)에서 클라라 헤일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습니다.
"클라라 헤일이라는 한 여성이 있습니다. 이 분은 할렘에서 마약에 중독된 채 태어난 수백 명의 아기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녀는 진정한 미국의 영웅입니다."
의원들이 기립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날 밤 TV를 통해 전 미국이 80세 할머니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기부금이 쏟아졌고, 헤일 하우스는 더 큰 건물로 이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클라라의 삶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새벽 5시에 일어나 아기들의 기저귀를 갈았고, 밤 11시까지 아기를 안고 자장가를 불렀습니다.
숫자 뒤에 숨은 천 개의 심장 박동
클라라 헤일이 1969년부터 1992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직접 돌본 아기와 아이들의 수는 1,000명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마약 중독, HIV/AIDS 감염, 유기—이유를 불문하고 클라라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1980년대 미국을 강타한 에이즈(AIDS) 위기 때, 헤일 하우스는 HIV에 감염된 채 태어난 아기들을 받아들인 최초의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다른 시설들이 감염을 두려워하며 문을 닫을 때, 클라라는 말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병에 걸린 게 아니에요. 사랑이 부족한 거예요."
1992년 12월 18일, 마지막 자장가
1992년 12월 18일, 클라라 "마더" 헤일은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할렘 거리에는 그녀를 기리는 수백 명의 조문객이 줄을 섰습니다. 그들 중 많은 이가 헤일 하우스에서 자란 아이들이었습니다—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아이를 안고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뉴욕시는 127번가와 레녹스 애비뉴 코너를 **"마더 헤일 웨이(Mother Hale Way)"**로 명명했습니다. 그녀가 수십 년간 아기들을 안고 걸었던 바로 그 거리입니다.
그녀가 남긴 말
클라라 헤일은 생전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의사도 아니고, 사회복지사도 아닙니다. 저는 그냥 아이를 안아주는 사람이에요. 아이를 안아줄 때, 그 아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됩니다."
그녀는 학위도 없었고, 큰 재산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두 팔과 하나의 심장이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1,000명의 아이들에게 충분하고도 남았습니다.
할렘의 작은 아파트에서 시작된 사랑은, 지금도 그 아이들의 심장 속에서 뛰고 있습니다.
클라라 "마더" 헤일(Clara "Mother" Hale, 1905–1992). 뉴욕 할렘. "Hold them. That's all. Hol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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