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로 간 최초의 미국인: 존 글렌이 지구를 세 바퀴 돌던 날
1962년 4월 24일, 우주 비행사 존 글렌은 미국 최초의 궤도 비행 성공 이후 영웅으로 귀환해 뉴욕에서 역사적인 환영 퍼레이드를 받았습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미국이 소련에 맞서 우주 경쟁의 불씨를 살린 순간이었습니다.
지구가 파랗다는 걸, 그는 직접 눈으로 봤다
1962년 2월 20일, 한 남자가 좁은 금속 캡슐 안에 몸을 구겨 넣고 시속 28,000킬로미터로 지구를 세 바퀴 돌았습니다. 창밖으로 펼쳐진 건 칠흑 같은 우주와 새파랗게 빛나는 지구. 그리고 그로부터 약 두 달 후인 1962년 4월 24일, 그 남자는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서 수백만 명의 환호를 받으며 퍼레이드를 펼쳤습니다. 바로 존 글렌(John Glenn) 이야기입니다.
우주는 이미 소련 것이었다 — 미국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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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렸을 때 미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설상가상으로 1961년에는 소련의 유리 가가린이 인류 최초로 우주 궤도를 비행하며 미국의 자존심을 완전히 구겨버렸죠. NASA는 다급했습니다. 머큐리 계획(Project Mercury)으로 미국인을 우주에 보내긴 했지만, 앨런 셰퍼드와 거스 그리섬의 비행은 궤도 진입 없이 잠깐 우주를 찍고 오는 수준이었습니다.
진짜 승부는 지구 궤도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임무가 오하이오 출신의 해병대 조종사, 마흔 살의 존 글렌에게 떨어졌습니다.
프렌드십 7호의 4시간 55분
글렌이 탑승한 캡슐의 이름은 프렌드십 7(Friendship 7). 1962년 2월 20일 오전 9시 47분, 아틀라스 로켓이 불을 뿜으며 플로리다 케이프 커내버럴을 박차고 올랐습니다. 4시간 55분 동안 지구를 세 바퀴 돈 글렌은 대서양에 무사히 착수했고, 미국 전역이 라디오와 TV 앞에서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하지만 비행 중 한 가지 아찔한 순간이 있었습니다. 지상 관제소에 캡슐의 히트 실드(열 차폐막)가 분리될 수 있다는 경고 신호가 들어온 것입니다. 만약 대기권 재진입 시 히트 실드가 없다면, 글렌은 순식간에 불타 사라질 운명이었습니다. 관제소는 고민 끝에 글렌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기로 결정했고, 글렌은 평소와 다른 재진입 절차를 묵묵히 수행했습니다. 다행히 신호는 오작동이었고, 글렌은 살아 돌아왔습니다.
뉴욕이 들썩인 날, 그리고 역사가 바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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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24일, 뉴욕 시내는 그야말로 축제였습니다. 글렌의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약 400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빌딩 위에서 색종이 조각이 눈처럼 쏟아졌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글렌에게 NASA 최고 훈장을 수여하며 "당신은 우리 모두에게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비행은 단순한 기술적 성취가 아니었습니다. 냉전의 공포 속에서 움츠러들던 미국 시민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 사건이었습니다. 훗날 글렌은 77세의 나이로 다시 우주왕복선을 타며 최고령 우주 비행 기록까지 세웁니다. 한 인간이 얼마나 멀리 꿈을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삶이었습니다.
🎬 영화·드라마 속 이 역사
《더 라이트 스터프》(The Right Stuff, 1983) 는 머큐리 계획의 우주 비행사들을 다룬 걸작으로, 존 글렌의 궤도 비행 장면이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배우 에드 해리스가 글렌을 연기하며 그의 강인한 도덕심과 신앙심을 인상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다만 영화는 비행사들 사이의 갈등과 경쟁을 드라마틱하게 과장한 부분이 있어, 실제 팀워크와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2020년 디즈니+ 드라마 버전도 같은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2016) 는 또 다른 시각을 보여줍니다. 존 글렌의 궤도 비행을 뒤에서 지원한 흑인 여성 수학자들, 특히 캐서린 존슨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에서, 글렌은 "컴퓨터(당시 사람을 가리키던 말)를 확인해달라"며 캐서린을 직접 지목합니다. 실제로 글렌이 그런 신뢰를 보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확인된 이야기입니다.
존 글렌은 2016년 9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가 프렌드십 7호 창밖으로 내다보았던 파란 지구의 풍경은, 지금도 우주를 꿈꾸는 모든 이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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