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소녀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다 — 필리스 휘틀리의 시 한 편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소녀가 쓴 시 한 편이 미국 독립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자유를 얻은 뒤에도 그녀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냉혹한 현실이었다.
심문을 받은 여자
1772년 보스턴. 한 아프리카 소녀가 방 안에 홀로 세워졌다.
맞은편에는 보스턴 최고의 지식인 18명이 앉아 있었다. 판사, 목사, 상인, 정치가들. 그들의 임무는 딱 하나였다. 이 노예 소녀가 정말로 직접 시를 썼는지 검증하는 것.
소녀의 이름은 필리스 휘틀리(Phillis Wheatley). 일곱 살 때 서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보스턴으로 팔려온 노예였다. 그런데 이 소녀는 라틴어를 읽었고, 고대 그리스 신화를 인용했고, 영어로 우아한 시를 썼다. 백인 남성들조차 흉내 내기 힘든 수준으로.
심문은 통과됐다. 그리고 역사가 바뀌었다.
배로 팔려온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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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1년, 노예선 '필리스 호'가 보스턴 항구에 닻을 내렸다. 배 이름이 곧 그녀의 이름이 됐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일곱 살 추정. 치아가 빠지는 중이었고, 영양실조로 뼈만 남아 있었다.
보스턴의 상인 존 휘틀리가 그녀를 샀다. 원래 목적은 아내의 시중을 드는 하녀. 그런데 이 소녀는 범상치 않았다. 불과 16개월 만에 영어를 읽고 쓰기 시작했다. 주인 가족의 딸이 가르쳐준 라틴어와 성경, 고전 문학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
열두 살에 첫 시를 썼다. 열네 살에는 지역 신문에 시가 실렸다. 보스턴 사교계가 술렁였다. "노예가 시를 썼다고?"
워싱턴을 무릎 꿇린 시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 필리스는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게 헌정시를 보냈다. 제목은 "조지 워싱턴 각하께(To His Excellency George Washington)."
"네가 지휘하는 곳에 자유의 여신이 깃들고, 그 빛나는 칼이 폭정의 사슬을 끊는다."
워싱턴은 깜짝 놀랐다. 그는 직접 답장을 썼다. "당신의 시적 재능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1776년 봄, 워싱턴은 캠브리지 사령부에서 필리스를 직접 접견했다. 노예 신분의 흑인 여성을 공식 초청한 것이다 —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1773년 런던에서 출판된 그녀의 시집 《다양한 주제에 관한 시(Poems on Various Subjects, Religious and Moral)》는 미국에서 시집을 출판한 최초의 흑인, 그리고 세 번째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자유를 얻은 뒤에 찾아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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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8년, 필리스는 법적 자유인이 됐다. 주인 존 휘틀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행복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존 피터스라는 흑인 남성과 결혼했다. 두 번째 시집을 출판하려 했지만 후원자를 찾지 못했다. 독립전쟁 후 경제가 무너지면서 남편은 빚쟁이에 쫓기다 결국 감옥에 갔다. 세 아이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필리스 자신도 1784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보스턴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그 나라에서, 그 선언에 시로 화답했던 여자는 극빈 속에 잊혀졌다.
🎬 영화·드라마 속 이 역사
《루츠》(Roots, 1977) 는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미국 노예가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필리스가 겪었을 노예선의 참혹함과 식민지 미국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셀마》(Selma, 2014) 는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지만, 그 뿌리에는 필리스 휘틀리처럼 "말과 글로 저항한" 흑인들의 역사가 이어진다. 영화는 실제 역사에 충실하지만 일부 인물 관계는 극적 구성을 위해 단순화됐다.
잊힌 이름이 다시 불리기까지
미국이 필리스 휘틀리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한 건 200년이 지난 뒤였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 보스턴 커먼 공원의 동상에, 하버드 연구소 이름에, 그리고 미국 문학 교과서 첫 장에 새겨져 있다.
워싱턴을 감동시킨 시를 쓴 소녀. 자유를 얻고도 자유롭지 못했던 여자. 그러나 그녀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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