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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 소녀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다 — 필리스 휘틀리의 시 한 편
미국역사

노예 소녀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다 — 필리스 휘틀리의 시 한 편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소녀가 쓴 시 한 편이 미국 독립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을 감동시켰다. 그러나 자유를 얻은 뒤에도 그녀를 기다린 것은 또 다른 냉혹한 현실이었다.

2026년 5월 7일3분 읽기

심문을 받은 여자

1772년 보스턴. 한 아프리카 소녀가 방 안에 홀로 세워졌다.

맞은편에는 보스턴 최고의 지식인 18명이 앉아 있었다. 판사, 목사, 상인, 정치가들. 그들의 임무는 딱 하나였다. 이 노예 소녀가 정말로 직접 시를 썼는지 검증하는 것.

소녀의 이름은 필리스 휘틀리(Phillis Wheatley). 일곱 살 때 서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보스턴으로 팔려온 노예였다. 그런데 이 소녀는 라틴어를 읽었고, 고대 그리스 신화를 인용했고, 영어로 우아한 시를 썼다. 백인 남성들조차 흉내 내기 힘든 수준으로.

심문은 통과됐다. 그리고 역사가 바뀌었다.


배로 팔려온 아이

노예 소녀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다 — 필리스 휘틀리의 시 한 편

1761년, 노예선 '필리스 호'가 보스턴 항구에 닻을 내렸다. 배 이름이 곧 그녀의 이름이 됐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고작 일곱 살 추정. 치아가 빠지는 중이었고, 영양실조로 뼈만 남아 있었다.

보스턴의 상인 존 휘틀리가 그녀를 샀다. 원래 목적은 아내의 시중을 드는 하녀. 그런데 이 소녀는 범상치 않았다. 불과 16개월 만에 영어를 읽고 쓰기 시작했다. 주인 가족의 딸이 가르쳐준 라틴어와 성경, 고전 문학을 닥치는 대로 흡수했다.

열두 살에 첫 시를 썼다. 열네 살에는 지역 신문에 시가 실렸다. 보스턴 사교계가 술렁였다. "노예가 시를 썼다고?"


워싱턴을 무릎 꿇린 시

1775년, 미국 독립전쟁이 막 시작됐을 때 필리스는 대륙군 총사령관 조지 워싱턴에게 헌정시를 보냈다. 제목은 "조지 워싱턴 각하께(To His Excellency George Washington)."

"네가 지휘하는 곳에 자유의 여신이 깃들고, 그 빛나는 칼이 폭정의 사슬을 끊는다."

워싱턴은 깜짝 놀랐다. 그는 직접 답장을 썼다. "당신의 시적 재능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직접 만나고 싶습니다." 1776년 봄, 워싱턴은 캠브리지 사령부에서 필리스를 직접 접견했다. 노예 신분의 흑인 여성을 공식 초청한 것이다 — 당시로서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1773년 런던에서 출판된 그녀의 시집 《다양한 주제에 관한 시(Poems on Various Subjects, Religious and Moral)》는 미국에서 시집을 출판한 최초의 흑인, 그리고 세 번째 여성 작가라는 기록을 남겼다.


자유를 얻은 뒤에 찾아온 것

관련 이미지

1778년, 필리스는 법적 자유인이 됐다. 주인 존 휘틀리가 세상을 떠나면서 해방된 것이다. 그러나 자유는 행복을 보장하지 않았다.

그녀는 존 피터스라는 흑인 남성과 결혼했다. 두 번째 시집을 출판하려 했지만 후원자를 찾지 못했다. 독립전쟁 후 경제가 무너지면서 남편은 빚쟁이에 쫓기다 결국 감옥에 갔다. 세 아이는 모두 어린 나이에 죽었다. 필리스 자신도 1784년, 서른한 살의 나이에 보스턴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홀로 숨을 거뒀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그 나라에서, 그 선언에 시로 화답했던 여자는 극빈 속에 잊혀졌다.


🎬 영화·드라마 속 이 역사

《루츠》(Roots, 1977) 는 아프리카에서 납치되어 미국 노예가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다. 필리스가 겪었을 노예선의 참혹함과 식민지 미국에서 살아남는 과정이 얼마나 처절했는지를 이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셀마》(Selma, 2014) 는 마틴 루터 킹의 이야기지만, 그 뿌리에는 필리스 휘틀리처럼 "말과 글로 저항한" 흑인들의 역사가 이어진다. 영화는 실제 역사에 충실하지만 일부 인물 관계는 극적 구성을 위해 단순화됐다.


잊힌 이름이 다시 불리기까지

미국이 필리스 휘틀리를 다시 기억하기 시작한 건 200년이 지난 뒤였다. 그녀의 이름은 지금 보스턴 커먼 공원의 동상에, 하버드 연구소 이름에, 그리고 미국 문학 교과서 첫 장에 새겨져 있다.

워싱턴을 감동시킨 시를 쓴 소녀. 자유를 얻고도 자유롭지 못했던 여자. 그러나 그녀의 펜은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진짜 자유였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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