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약을 처방한 의사들 — 제임스 가필드 대통령을 죽인 건 총알이 아니었다
1881년 7월 2일,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총에 맞았지만 총알이 아닌 의사들의 손에 죽었다. 세균이론을 무시한 당대 최고의 의료진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파헤친다.
총을 쏜 사람은 감옥에 갔지만, 진짜 살인자는 달랐다
1881년 7월 2일, 워싱턴 D.C.의 한 기차역. 미국 제20대 대통령 제임스 가필드는 플랫폼을 걷고 있었다. 그때 찰스 기토라는 남자가 다가와 두 발을 발사했다. 한 발은 빗나갔고, 나머지 한 발은 등에 박혔다. 상처는 치명적이지 않았다. 의사들이 즉시 달려들었다. 그리고 79일 뒤, 가필드는 죽었다.
총알 때문이 아니었다. 의사들 때문이었다.
"세균이론? 그건 유럽 유행이야" — 무지한 자신감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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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년 미국 의학계는 이미 유럽에서 확립된 리스터의 무균 수술법을 알고 있었다. 조지프 리스터는 상처에 무균 처치를 하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고 증명했고, 유럽 병원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가필드를 치료한 주치의 찰스 윌러드 블리스는 달랐다. 그는 세균이론을 "비과학적 유행"이라 일축했다. 총알은 척추에 닿지 않고 안전한 곳에 박혀 있었다. 환자를 그냥 두었다면 회복할 가능성이 충분했다.
그러나 블리스는 소독도 하지 않은 맨손가락과 의료기구를 상처에 집어넣었다. 총알의 위치를 찾겠다며 반복해서 탐침을 들이밀었다. 12명 이상의 의사가 같은 짓을 했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금속 탐지기를 발명해 총알 위치를 찾으려 했지만, 블리스는 이마저 방해했다.
7.5cm 상처가 50cm 감염 덩어리가 되었다
처음 총상 부위는 7.5센티미터 정도의 상처였다. 79일이 지나자 감염이 퍼져 50센티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농양 덩어리가 됐다. 가필드는 고열에 시달리며 체중이 절반 가까이 빠졌다. 당시 신문들은 매일 대통령의 상태를 보도했고, 국민들은 공포와 희망 사이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1881년 9월 19일, 가필드는 패혈증과 폐렴으로 숨을 거뒀다. 나중에 부검을 진행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 총알은 여전히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 대통령을 죽인 것은 총알이 아니라 의사들이 심어준 세균이었다.
"나는 대통령을 죽이지 않았다. 의사들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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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장에서 기토는 이렇게 외쳤다. 역설적이게도 그 말은 의학적으로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법원은 그를 유죄로 선고했고, 1882년 6월 교수형에 처했다.
가필드의 죽음은 미국 의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이후 미국 병원들은 무균 수술을 빠르게 도입하기 시작했다. 한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이 수많은 미래 환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 영화·드라마 속 이 역사
2011년 출판된 논픽션 《Destiny of the Republic》(저자 캔디스 밀러드)은 이 사건을 다시 세상에 알린 결정적인 작품이다. 가필드의 인간적인 면모, 기토의 광기, 그리고 의사들의 오만함이 긴박하게 교차하며 서술된다. 이 책은 이후 여러 다큐멘터리의 원전이 되었으며, 미국 역사 채널의 다큐 시리즈에서도 가필드의 죽음을 "의학적 과실로 인한 대통령 사망"이라는 시각으로 재조명했다. 실제 역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일부 드라마 재연에서 블리스를 단순한 악당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그는 당대 최고 권위의 의사였다는 점 — 그 무지는 악의가 아니라 시대의 한계였다.
당신의 의사를 믿으세요, 하지만 확인은 하세요
가필드는 재임 200일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는 남북전쟁 영웅이자 독학으로 대통령이 된 인물이었다. 총은 그를 멈추지 못했지만, 무지와 오만이 그를 쓰러뜨렸다. 의학의 역사는 때로 이렇게 잔인하게 진보한다 — 누군가의 죽음을 대가로 치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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