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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3년 4월 13일, 토머스 제퍼슨 — 자유를 글로 새긴 사람
미국역사

1743년 4월 13일, 토머스 제퍼슨 — 자유를 글로 새긴 사람

1743년 4월 13일, 버지니아 시골에서 태어난 한 청년은 33세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생 600명의 노예를 소유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 — 미국 건국의 가장 빛나면서도 가장 모순된 영웅의 이야기.

2026년 4월 13일4분 읽기

한 사람, 두 얼굴

오늘은 2026년 4월 13일. 정확히 283년 전 오늘, 버지니아 식민지의 외딴 농장 섀드웰(Shadwell)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33세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All men are created equal)"**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그리고 같은 손으로, 평생 약 600명의 흑인 노예를 소유했습니다.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 미국 건국의 아버지 중 가장 모순된 인물, 그리고 가장 오래 기억되는 인물입니다.

렘브란트 필이 그린 토머스 제퍼슨 초상화 (1800)


시골 소년이 책을 사랑하기까지

제퍼슨의 아버지 피터 제퍼슨은 측량 기사이자 농장주였습니다. 정식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책을 사랑한 사람이었고, 그 성향은 아들에게 그대로 이어졌습니다.

9세에 라틴어를 배웠고, 16세에 윌리엄앤드메리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그는 하루 15시간씩 공부했다고 전해집니다. 법학을 익혔고, 음악(바이올린)을 즐겼으며, 건축과 농업, 식물학, 고고학, 언어학 — 손대지 않은 분야가 거의 없었습니다.

당대 사람들은 그를 이렇게 평했습니다:

"이 청년은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 가장 많은 것을 배우는 사람이다."


33세, 인류의 문장을 쓰다

1776년 6월, 33세의 제퍼슨은 필라델피아 제2차 대륙회의에 버지니아 대표로 와 있었습니다. 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할 5인 위원회에 그가 포함되었고, 벤저민 프랭클린존 애덤스는 가장 어린 그에게 펜을 맡겼습니다.

17일 동안 그는 작은 하숙방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가 써내려간 문장은 이렇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진리들을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창조주로부터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그 가운데에는 생명, 자유, 그리고 행복의 추구가 있다."

이 한 문장이 향후 250년 동안 미국뿐 아니라 프랑스 혁명, 베트남 독립선언서, 한국의 3·1 독립선언서까지 — 전 세계 자유의 언어가 되었습니다.

존 트럼불의 〈독립선언서〉(1819) —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제퍼슨


파리에서 본 새로운 세상

1784년부터 5년간 제퍼슨은 프랑스 주재 미국 공사로 파리에 머물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두 가지를 얻었습니다.

첫째, 유럽의 건축과 미술, 와인, 책에 대한 깊은 안목. 훗날 몬티첼로 저택과 버지니아 대학교 건물의 도면을 그가 직접 그릴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둘째, 프랑스 혁명의 현장. 그는 바스티유 함락(1789년 7월 14일)을 직접 목격했고, 라파예트의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초안 작성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같은 시기, 그는 파리에서 또 다른 결정을 내렸습니다. 죽은 아내의 이복 여동생인 노예 샐리 헤밍스(Sally Hemings) — 당시 16세 — 와의 관계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6명의 자녀가 태어났고, 모두 노예 신분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1998년 DNA 검사로 결정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3대 대통령 — 그리고 루이지애나 매입

1801년, 그는 미국의 3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임기 중 가장 큰 업적은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1803년)**입니다.

나폴레옹이 자금난에 시달리던 틈을 타, 제퍼슨은 1,500만 달러(당시 1에이커당 약 3센트)에 미시시피강 서쪽의 광활한 영토를 사들였습니다. 한 번에 미국의 영토가 두 배로 늘어났습니다 — 오늘날 15개 주에 해당하는 땅입니다.

이는 헌법에 명시되지 않은 대통령 권한을 행사한 사례였지만, 제퍼슨은 "국가의 미래를 위해" 결단했습니다. 정작 본인은 평생 '강한 연방정부'에 반대해온 사람이었기에, 또 하나의 모순이었습니다.


몬티첼로 — 평생의 집, 평생의 부채

버지니아 샬러츠빌의 작은 산 위에, 제퍼슨은 평생에 걸쳐 자기 손으로 집을 지었습니다. 이름은 이탈리아어로 '작은 산'을 뜻하는 몬티첼로(Monticello).

40년에 걸쳐 짓고 또 고치고 또 헐고 다시 지었습니다. 회전 책장, 자동문, 7일짜리 시계 — 제퍼슨이 직접 설계한 발명품들이 가득합니다. 오늘 미국 5센트 동전 뒷면에 그려진 건물이 바로 이곳입니다.

그러나 몬티첼로는 그를 평생 빚더미에 빠뜨렸습니다. 그가 죽었을 때 부채는 약 10만 달러(현재 가치 약 250만 달러). 결국 그의 사후, 후손들은 몬티첼로와 그곳의 노예 130명을 모두 경매로 팔아야 했습니다.

제퍼슨이 직접 설계한 몬티첼로 저택


같은 날, 같은 시간 — 친구와 함께

미국 역사상 가장 기묘한 우연 중 하나가 있습니다.

1826년 7월 4일 — 독립선언서 50주년 기념일.

이날 오후 1시경, 토머스 제퍼슨이 몬티첼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6시 20분, 매사추세츠 퀸시에서 그의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존 애덤스(2대 대통령)**가 숨을 거두었습니다.

애덤스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고 전해집니다.

"토머스 제퍼슨은 살아 있다(Thomas Jefferson survives)..."

그는 친구가 이미 5시간 전에 세상을 떠난 줄 몰랐습니다.

50년 전 함께 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두 노인이, 같은 날 같은 의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묘비명 — 본인이 직접 쓴 것

제퍼슨은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썼습니다. 흥미롭게도 거기에 '미국 대통령'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의 작성자, 버지니아 종교 자유법의 작성자, 그리고 버지니아 대학교의 아버지 — 토머스 제퍼슨, 여기 잠들다."

대통령직보다 — 글을 쓴 사람, 자유를 법으로 만든 사람, 학교를 세운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모순된 위대함

제퍼슨은 노예 해방을 글로는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노예 600명 중 단 5명만을 해방했습니다. 그가 해방한 5명은 모두 샐리 헤밍스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가 만든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문장은 그의 시대에는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87년이 지나서야 링컨이 노예해방선언으로, 142년이 지나서야 1965년 투표권법으로 — 그 문장은 조금씩 현실이 되어갔습니다.

오늘 그의 283번째 생일에, 우리는 그의 모순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동시에 그가 남긴 한 문장이 인류에게 얼마나 거대한 빛을 던졌는지도 기억해야 합니다.

빛과 그림자 모두를 가진 사람 — 그것이 우리가 그를 250년 동안 잊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인물: 토머스 제퍼슨 (Thomas Jefferson) | 출생: 1743년 4월 13일, 버지니아 섀드웰 | 사망: 1826년 7월 4일, 버지니아 몬티첼로 | 미국 3대 대통령(1801–1809), 독립선언서 작성자, 루이지애나 매입 단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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