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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수호의 날 — 서해를 지킨 이들을 기억합니다
역사

서해수호의 날 — 서해를 지킨 이들을 기억합니다

매년 3월 넷째 금요일은 서해수호의 날입니다. 제2연평해전, 천안함 피격, 연평도 포격으로 희생된 55명의 용사를 기억하는 날의 의미를 돌아봅니다.

2026년 3월 28일3분 읽기

서해수호의 날이란?

서해수호의 날은 매년 3월 넷째 금요일로, 서해에서 북한의 도발로 희생된 국군 장병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헌신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법정 기념일입니다.

2016년 정부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했으며, 국방부 주관으로 매년 추모식이 거행됩니다.


왜 3월 넷째 금요일인가?

서해에서 발생한 3대 북한 도발 사건 중 천안함 피격 사건(2010년 3월 26일) 이 3월에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그 희생을 중심에 놓되, 다른 두 사건의 희생자들까지 함께 추모하는 날로 삼은 것입니다.


서해를 물들인 세 번의 도발

1.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제2연평해전 당시 피격된 참수리 357호

2002년 한일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이 아무런 예고 없이 우리 해군 고속정 참수리 357호에 선제 기습 공격을 가했습니다.

  • 전사자: 윤영하 소령 등 6명
  • 부상자: 18명
  • 참수리 357호는 결국 침몰

당시 대한민국은 월드컵 4강 신화로 온 나라가 들떠 있었습니다. 그 기쁨의 날, 서해에서는 여섯 명의 젊은이가 나라를 지키다 숨졌습니다. 전사자 평균 나이는 23세였습니다.


2. 천안함 피격 사건 (2010년 3월 26일)

인양된 천안함 함미 잔해

2010년 3월 26일 밤 9시 22분, 백령도 인근 해상에서 해군 초계함 **천안함(PCC-772)**이 북한 잠수정이 발사한 어뢰에 의해 침몰했습니다.

  • 전사자: 46명
  • 승조원 104명 중 58명 구조
  • 함미와 함수로 절단되어 침몰

천안함 인양 현장

인양된 어뢰 추진부에는 '1번' 이라는 북한 글씨체 표기가 선명했습니다. 다국적 합동조사단의 정밀 조사 결과, 북한 어뢰 CHT-02D에 의한 수중 폭발로 결론 났습니다.

천안함은 서해수호의 날 추모의 중심에 있는 사건입니다. 46명 — 이름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남편이었고, 아버지였습니다.


3. 연평도 포격 사건 (2010년 11월 23일)

포격으로 불타는 연평도

천안함 피격 8개월 후인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은 연평도를 향해 해안포와 방사포 170여 발을 발사했습니다. 1953년 정전협정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 거주 지역에 포탄이 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 전사자: 해병대원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 2명
  • 민간인 사망: 2명
  • 부상: 군인 16명, 민간인 3명
  • 민가 및 군 시설 다수 파손

연평도 주민들은 포격이 시작되자 대피소로 달려갔습니다. 섬 곳곳에서 불길이 치솟았고, 화면으로 그 장면을 본 대한민국 국민들은 전쟁이 다시 시작된 것인지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55명의 이름

세 사건을 합산하면 총 55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희생되었습니다.

사건날짜희생자
제2연평해전2002.06.29군인 6명
천안함 피격2010.03.26군인 46명
연평도 포격2010.11.23군인 2명 + 민간인 2명
합계55명

이름 없이 숫자로만 기억되지 않도록, 서해수호의 날은 존재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서해는 지금도 긴장이 끊이지 않는 바다입니다. 북방한계선(NLL)을 사이에 두고 매일 우리 군이 경계를 서고 있습니다.

평화는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누군가 그 바다에서, 그 섬에서 자리를 지키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도 일상을 살아갑니다.

서해수호의 날은 그 '누군가'들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평화를 지키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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