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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현장에서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낸 구조대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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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현장에서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낸 구조대원들의 이야기

1995년 오클라호마시티 연방청사 폭탄 테러 이후, 구조대원들은 붕괴된 잔해 속에서 15시간 넘게 매몰된 생존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중에서도 마지막 생존자 브랜디 리겐스를 구출한 이야기는 절망 속에서 피어난 인간 의지의 상징으로 기억됩니다.

2026년 4월 18일4분 읽기

"아직 살아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 오클라호마시티 폭탄 테러, 마지막 생존자를 구출한 사람들

1995년 4월 19일, 평범한 아침이 산산조각 나다

1995년 4월 19일 오전 9시 2분, 미국 오클라호마주 오클라호마시티 다운타운에 위치한 알프레드 P. 머라 연방청사(Alfred P. Murrah Federal Building)가 거대한 폭발과 함께 무너져 내렸습니다. 국내 테러범 티머시 맥베이(Timothy McVeigh)가 트럭에 실은 약 2,200kg의 폭발물을 터뜨린 것이었습니다.

9층짜리 건물의 전면부가 통째로 붕괴했고, 168명이 사망했습니다. 그중에는 건물 2층에 있던 어린이집의 아이 19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부상자는 680명이 넘었고, 주변 300여 개 건물도 피해를 입었습니다. 9·11 테러 이전까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국내 테러였습니다.

폭발 직후, 오클라호마시티는 아비규환이었습니다. 먼지와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사방에서 비명이 들렸습니다. 하지만 그 지옥 같은 현장에서, 사람들은 도망치는 대신 잔해 속으로 뛰어들기 시작했습니다.

잔해 속으로 뛰어든 사람들

폭발 후 몇 분도 되지 않아, 인근에 있던 소방관, 경찰, 의료진, 그리고 평범한 시민들이 현장으로 달려왔습니다. 아직 추가 붕괴의 위험이 있었고, 2차 폭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지만, 아무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 소방서의 구조대원들은 불안정하게 매달린 콘크리트 잔해 사이를 기어 들어가며 생존자를 찾았습니다. 수십 개의 소방서에서 지원이 왔고, 각지에서 수색구조 전문팀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오클라호마시티 경찰관 테리 예이키(Sgt. Terry Yeakey)는 폭발 직후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사람 중 하나로, 자신의 몸이 피투성이가 되면서도 여러 명의 생존자를 끌어냈습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소방관 크리스 필즈(Chris Fields)가 건물 잔해에서 꺼낸, 피 묻은 1살 아기 베일리 앨몬(Baylee Almon)을 안고 있는 사진입니다. 사진작가 찰스 포터 4세(Charles Porter IV)가 찍은 이 사진은 전 세계에 보도되어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이 비극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베일리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지만, 크리스가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리는 그 모습에는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인 돌봄의 본능이 담겨 있었습니다.

브랜디 리겐스 — 마지막 생존자

폭발 후 시간이 흐르면서, 생존자 발견 소식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브랜디 리겐스(Brandie Liggons)**는 당시 연방청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이었습니다. 폭발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그녀는 거대한 콘크리트 더미 아래에 갇혔습니다. 어둠 속에서 꼼짝할 수 없었고, 주변의 신음 소리가 하나둘 사라져갔습니다.

하지만 리겐스보다도 더 오랜 시간 잔해 아래에서 버틴 마지막 생존자는 **다이나 브래들리(Daina Bradley)**였습니다. 그녀는 사회보장국 사무실에서 어머니, 두 자녀와 함께 있었습니다. 폭발 순간, 건물이 그녀의 오른쪽 다리 위로 무너져 내렸습니다.

다이나는 잔해 아래에서 의식을 유지한 채 구조를 기다렸습니다. 구조대원들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폭발 후 몇 시간이 지나서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를 꺼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이 그녀의 다리를 짓누르고 있었고, 잘못 움직이면 주변 잔해가 연쇄 붕괴할 위험이 있었습니다.

불가능한 선택, 그리고 구출

구조팀의 리더였던 오클라호마시티 소방국의 앤디 설리번(Andy Sullivan) 대위와 의료진은 끔찍한 현실에 직면했습니다. 다이나를 살리려면 그 자리에서 다리를 절단해야 했습니다. 병원도, 수술실도 아닌 먼지투성이 잔해 속에서.

의사 **게리 매시(Dr. Gary Massad)**가 자원했습니다. 그는 좁은 잔해 틈 사이로 기어 들어가 다이나 곁에 도달했습니다. 붕괴 위험 속에서 최소한의 장비로 현장 절단 수술이 시작되었습니다. 다이나에게는 진정제와 진통제가 투여되었지만, 그 고통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구조대원들은 다이나를 조심스럽게 잔해 밖으로 옮겼고, 그녀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폭발 후 약 6시간, 다이나 브래들리는 머라 빌딩에서 살아 나온 마지막 생존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이나의 어머니 셰릴 해머(Cheryl Hammon)과 두 자녀 — 3살 페론(Peachlyn)과 생후 4개월 개일린(Gabreon) — 은 끝내 살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다이나는 오른쪽 다리를 잃었지만 살아남았고, 그 사실이 기적인 동시에 평생의 아픔이 되었습니다.

재가 된 도시에 피어난 연대

폭탄 테러 이후, 오클라호마시티에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미국 전역에서 12,000명이 넘는 자원봉사자가 몰려왔습니다. 혈액 기부가 쏟아졌고, 구호 물자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현장에서 수색 작업을 하던 구조대원들에게 인근 주민들은 따뜻한 음식과 물을 쉬지 않고 나날았습니다.

이 사건 이후 생겨난 "오클라호마 스탠더드(Oklahoma Standard)"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재난 발생 시 보여줄 수 있는 시민적 연대와 돌봄의 최고 기준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슬로건이 아니라, 그날 현장에서 실제로 벌어진 수천 가지 작은 용기와 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기억의 의무

오늘날 오클라호마시티 국립 메모리얼(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에는 168개의 빈 의자가 놓여 있습니다. 큰 의자는 성인을, 작은 의자는 어린이를 상징합니다. 밤이 되면 의자 아래에서 은은한 불빛이 올라와 어둠을 밝힙니다.

소방관 크리스 필즈는 그날의 기억이 평생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말합니다. 다이나 브래들리는 의족을 하고 새 삶을 시작했으며, 자신을 구해준 구조대원들과 평생 연락을 이어갔습니다.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람들을 구한 경찰관 테리 예이키는 이후 PTSD로 극심한 고통을 겪다 안타깝게도 1년 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때로 인간의 악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하지만 그 악에 맞서는 인간의 선함 역시 상상을 초월합니다. 1995년 4월 19일,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우리는 둘 다 보았습니다.

건물은 무너졌지만, 사람들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오클라호마 스탠더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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