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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잡고 있겠다, 어서 뛰어!" —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마지막으로 지킨 것,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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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잡고 있겠다, 어서 뛰어!" —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마지막으로 지킨 것,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 이야기

2007년 버지니아공대 총격 사건 당시, 76세의 항공공학 교수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자신의 몸으로 교실 문을 막아 학생들이 창문으로 탈출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그는, 60여 년 뒤 미국의 교실에서 다시 한번 생명을 택했습니다.

2026년 4월 25일3분 읽기

"문을 잡고 있겠다, 어서 뛰어!" —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마지막 수업

두 번의 지옥을 건넌 사람

리비우 리브레스쿠(Liviu Librescu)는 1930년 루마니아 플로이에슈티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열 살이 되던 해, 세상은 이미 지옥이었습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가족은 강제 노동 수용소에 끌려갔고, 어린 리비우는 굶주림과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는 홀로코스트를 살아남은 수천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리브레스쿠는 부쿠레슈티 공과대학에서 항공공학을 공부했습니다. 뛰어난 연구 성과에도 불구하고 루마니아 공산 정권은 그의 이스라엘 이주를 막았습니다. 수년간의 투쟁 끝에 1978년,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 총리가 루마니아 정부와 직접 교섭하여 그의 출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리브레스쿠는 이스라엘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이후 미국 버지니아공대(Virginia Tech)의 항공공학과 교수로 초빙되어 블랙스버그의 작은 대학 도시에 정착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를 "엄격하지만 따뜻한 교수"로 기억합니다. 그의 강의는 까다롭기로 유명했지만, 연구실 문은 항상 열려 있었고, 그는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과 사정을 기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007년 4월 16일, 노리스 홀 204호

그날은 홀로코스트 기념일(욤 하쇼아) 전날이었습니다. 76세의 리브레스쿠 교수는 평소처럼 노리스 홀(Norris Hall) 204호에서 고체역학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수업이 한창이던 9시 40분경, 복도에서 총성이 울렸습니다.

그 순간, 리브레스쿠 교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즉각적으로 이해했습니다. 60여 년 전 수용소에서 익힌 생존 본능이었을까요, 아니면 교단에 선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었을까요. 그는 학생들에게 소리쳤습니다.

"창문으로 뛰어내려! 지금 당장!"

학생들이 2층 창문을 열고 하나둘 뛰어내리는 동안, 리브레스쿠 교수는 자신의 몸으로 교실 문을 막았습니다. 복도에서 총을 든 범인이 문을 열려고 했지만, 76세 노교수는 온몸의 힘을 다해 버텼습니다. 문 너머로 총알이 날아왔습니다. 그래도 그는 문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학생 23명 중 22명이 창문을 통해 탈출에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학생이 창틀을 넘는 순간, 범인의 총알이 문을 관통하여 리브레스쿠 교수의 몸을 맞혔습니다. 그는 문 앞에서 쓰러졌습니다.

리비우 리브레스쿠는 그날 노리스 홀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향년 76세. 32명의 희생자 중 한 명이었지만, 그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그 숫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두 번 살아남았어야 했는데"

사건 이후, 생존 학생들의 증언이 이어졌습니다. 당시 교실에 있던 학생 앨릭 클라인(Alec Calhoun)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수님이 문을 막지 않았다면, 우리 중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겁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도망칠 시간을 주셨습니다."

또 다른 학생 조 나치만(Joe Nachman)은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교수님은 소리치면서도 침착하셨습니다. 마치 이런 상황을 전에도 겪어본 것처럼."

리브레스쿠 교수의 아들 조(Joe Librescu)는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삶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아버지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공산 정권의 억압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을 택했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추모했고, 버지니아공대는 그의 이름을 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루마니아 정부는 사후에 최고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이스라엘로 옮겨져 안장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문을 잡고 있는 동안

이 이야기가 유독 가슴을 치는 이유는, 리브레스쿠 교수의 마지막 선택이 그의 전 생애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홀로코스트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어주어 그는 살았습니다. 공산 정권하에서, 누군가가 그를 위해 교섭하여 그는 자유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2007년 4월, 이번에는 그가 문을 잡고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평생 "살아남은 자"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그는 다른 사람들을 "살아남은 자"로 만들었습니다.

수업은 끝났지만, 그의 마지막 수업은 어떤 교과서에도 없는 것을 가르쳤습니다.

삶의 가치는 살아남는 것에 있지 않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서 있느냐에 있다.

노리스 홀 204호의 문 앞에서, 76세의 노교수는 그것을 증명했습니다.


리비우 리브레스쿠 교수는 사후 버지니아공대의 '대학 공로 훈장(University Distinguished Achievement Award)'을 추서받았으며, 캠퍼스 내 추모 공원의 32개 추모석 중 하나에 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매년 4월 16일, 버지니아공대 학생들은 "We Remember"라는 문구와 함께 그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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