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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의 시간이 멈추기 전에, 내가 약을 만들겠다" —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약회사를 세운 아버지, 존 크롤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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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들의 시간이 멈추기 전에, 내가 약을 만들겠다" — 두 아이를 살리기 위해 제약회사를 세운 아버지, 존 크롤리 이야기

1998년, 존 크롤리는 두 아이가 '폼페병'이라는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자 의학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직접 바이오 제약회사를 설립했습니다. 불가능에 가까운 도전 끝에 그는 실제로 치료제 개발에 성공하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고, 전 세계 폼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선물했습니다.

2026년 6월 22일3분 읽기

진단: "아이들에게 남은 시간은 9년입니다"

1998년, 캘리포니아에서 살고 있던 존 크롤리(John F. Crowley)와 아내 에일린은 생후 15개월 된 딸 메간(Megan)이 심각한 근력 저하를 보이자 병원을 찾았습니다. 의사가 내린 진단은 폼페병(Pompe disease). 세포 내 글리코겐을 분해하는 효소가 결핍되어 근육이 서서히 파괴되는 유전성 희귀 난치병이었습니다. 발병 빈도는 약 4만 명 중 1명. 치료법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더 큰 충격은 곧 이어졌습니다. 아들 패트릭(Patrick) 역시 같은 진단을 받은 것입니다. 의료진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영아형 폼페병 환자의 기대 수명은 9세 미만입니다."

존은 하버드 경영대학원(HBS)을 졸업한 뒤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ristol-Myers Squibb)에서 마케팅 업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의학이나 생화학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밤, 그는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치료제가 없다면, 내가 만들겠어."


밤마다 논문을 읽은 아버지

존은 퇴근 후 매일 밤 의학 논문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폼페병에 관한 연구 자료를 닥치는 대로 모았고, 전 세계에서 이 질환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냈습니다. 대부분 답장이 없었지만, 한 사람이 응답했습니다.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의 생화학자 윌리엄 캔필드(William Canfield) 박사였습니다.

캔필드 박사는 폼페병 치료에 필요한 핵심 효소인 **산성 알파-글루코시다제(acid alpha-glucosidase, GAA)**를 재조합 기술로 생산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었지만, 자금 부족으로 임상 단계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존은 결심했습니다. 2000년, 그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노바자임 파마슈티컬즈(Novazyme Pharmaceuticals)**라는 바이오 스타트업을 공동 창업합니다. 의학 학위도, 실험실 경험도 없는 서른두 살의 아버지가 벤처캐피털을 설득하고, 과학자를 고용하고, FDA 규제를 공부하며 제약회사를 운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해관계의 충돌"이라는 벽

가장 큰 장벽은 과학이 아니라 윤리적 딜레마였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살리기 위해 회사를 세운 CEO가 임상시험에 자기 아이를 등록시키는 것은 이해관계 충돌(conflict of interest)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투자자들과 규제 당국은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했고, 존은 매 순간 아버지와 CEO 사이에서 찢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2001년, 노바자임은 세계 최대 바이오 제약회사 중 하나인 **젠자임(Genzyme)**에 인수됩니다. 존은 젠자임의 고위 임원으로 합류하여 개발을 계속 이끌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도 "CEO가 개인적 이유로 하나의 약에 자원을 집중시키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습니다.

존은 자신의 직위를 내려놓는 대신, 자녀들이 임상시험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CEO가 아닌 아버지로서 이 문제를 바라봅니다. 하지만 이 치료제는 내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라, 전 세계 폼페병 환자 모두의 것이어야 합니다."


2006년 4월 28일 — FDA 승인

2006년, **마이오자임(Myozyme)**이라는 이름의 효소 대체 요법(ERT) 치료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습니다. 이것은 역사상 최초의 폼페병 치료제였습니다.

메간과 패트릭은 이미 임상시험 단계에서 이 약을 투여받고 있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휠체어를 사용해야 했고, 인공호흡기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 살아있었습니다. 의사들이 선고한 '9세'라는 기한을 훌쩍 넘기고 있었습니다.

메간은 결국 2024년까지도 생존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패트릭 역시 20대를 넘겨 성인이 되었습니다. 의료진의 기대 수명을 15년 이상 뛰어넘은 것입니다.


영화 〈특별한 용기(Extraordinary Measures)〉

이 놀라운 실화는 저널리스트 **지타 애넌드(Geeta Anand)**가 월스트리트저널에 연재한 기사와 이후 출간한 책 The Cure를 바탕으로, 2010년 영화 **〈Extraordinary Measures〉**로 제작되었습니다. 브렌던 프레이저(Brendan Fraser)가 존 크롤리 역을, 해리슨 포드(Harrison Ford)가 캔필드 박사를 모델로 한 과학자 역을 맡았습니다.

존 크롤리 본인은 이후 **암젠(Amgen)**의 고위 임원을 거쳐 여러 바이오테크 기업의 이사로 활동하면서,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정책 옹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만든 기적

존 크롤리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아버지가 아이를 구했다"는 서사에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가진 것 — 경영 능력, 설득력, 끈기 — 을 모두 걸고, 자신에게 없는 것 — 의학 지식, 연구 경험 — 은 세상에서 빌려 와, 아무도 만들지 않으려 했던 약을 세상에 존재하게 만들었습니다.

폼페병 환자는 전 세계에 수천 명에 불과합니다. 제약회사 입장에서는 투자 대비 수익이 나지 않는 시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나서지 않았고, 환자들은 조용히 죽어갔습니다. 한 아버지의 절박한 사랑이 그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존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행동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유일한 교훈입니다."

메간과 패트릭은 오늘도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수백 명의 폼페병 환자들이 마이오자임 덕분에 매일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아버지의 불가능한 도전이 만든, 현실의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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