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로 돌아가기
하루에 2만 3천 명 — 앤티텀 전투 (1862년)
us-history

하루에 2만 3천 명 — 앤티텀 전투 (1862년)

1862년 9월 17일. 미국 역사상 가장 피비린내 나는 하루. 이 전투가 노예해방선언을 이끌었다.

2026년 4월 21일1분 읽기

침공

1862년 9월, 남부연합 총사령관 로버트 E. 리가 북부로 진격했다.

목표는 메릴랜드 점령. 영국과 프랑스의 남부 지원을 이끌어내려는 도박이었다.

북군 총사령관 맥클렐런이 막아섰다. 앤티텀 크리크, 메릴랜드주.


9월 17일

새벽 5시 30분, 포성이 울렸다.

옥수수밭, 선큰 로드(피의 길), 번사이드 다리. 전선이 세 곳에서 동시에 무너지고 열렸다.

12시간 동안 2만 3천 명이 죽거나 다쳤다. 하루 사상자로는 미국 역사상 최다 기록이다. 지금도 깨지지 않았다.


전술적 무승부

전투는 무승부였다. 리는 버지니아로 후퇴했다. 맥클렐런은 추격하지 않았다.

그러나 링컨에게는 충분했다.


선언

전투 5일 후, 링컨이 예비 노예해방선언을 발표했다.

"1863년 1월 1일부터, 반란 중인 주의 모든 노예는 영원히 자유다."

앤티텀이 없었다면 선언도 없었다. 링컨은 승리 직후에만 발표할 수 있었다.


전투일: 1862년 9월 17일 | 사상자: 2만 3천여 명 | 노예해방선언 예고: 1862년 9월 22일 | 정식 발효: 1863년 1월 1일

새 글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새 글이 올라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