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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의 대가 —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적은 56명에게 벌어진 일
미국역사

서명의 대가 — 독립선언서에 이름을 적은 56명에게 벌어진 일

1776년 여름, 필라델피아의 한 방에서 56명의 남자가 양피지에 이름을 적었습니다. 그 서명은 영국 국왕에 대한 반역이었고, 들키면 교수형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지막에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서로에게 건다고.

2026년 4월 13일5분 읽기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건다"

독립선언서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1776년 7월 4일, 제2차 대륙회의가 선언문 본문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명은 약 한 달 뒤인 8월 2일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의사당)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일부는 그보다 더 늦게, 11월에야 서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56명. 13개 식민지의 대표들이었습니다.

이 서명은 상징적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영국 국왕 조지 3세의 입장에서 그들은 반역자였고, 그 죄의 형벌은 교수형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실을 알고도 펜을 들었습니다.


가장 큰 서명 — John Hancock

Declaration Signatures

원본 독립선언서를 보면 한 서명이 유독 거대합니다. 매사추세츠 대표이자 대륙회의 의장이었던 존 행콕(John Hancock).

전설에 따르면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조지 왕이 안경 없이도 읽을 수 있게 해주지."

행콕은 이미 영국 당국의 지명수배자였습니다. 밀수업자로 고발되었고, 렉싱턴·콩코드 전투 당시 영국군이 체포하려 한 인물이 바로 행콕과 샘 애덤스였습니다. 그에겐 서명이 새로운 죄목이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영어에서 "give me your John Hancock"이 "서명해달라"는 뜻이 된 것도 이 일화에서 나왔습니다.


13개 식민지별 서명자

식민지인원대표적 인물
펜실베이니아9Benjamin Franklin, Benjamin Rush
버지니아7Thomas Jefferson, Richard Henry Lee
매사추세츠5John Adams, Samuel Adams, John Hancock
뉴저지5Richard Stockton, John Witherspoon
메릴랜드4Charles Carroll of Carrollton
코네티컷4Roger Sherman
사우스캐롤라이나4Edward Rutledge (최연소, 26세)
뉴욕4Philip Livingston
뉴햄프셔3Josiah Bartlett
조지아3Button Gwinnett
노스캐롤라이나3Joseph Hewes
델라웨어3Caesar Rodney
로드아일랜드2Stephen Hopkins

세 거장

Thomas Jefferson (33세, 버지니아) — 선언문의 초안을 거의 혼자 작성했습니다. 17일 만에 썼고, 프랭클린과 애덤스가 일부 수정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의 작성자. 훗날 3대 대통령.

Benjamin Franklin (70세, 펜실베이니아) — 당시 이미 국제적 명성을 지닌 과학자·외교관. 서명 직후 그는 이렇게 농담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반드시 함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주 확실하게 각자 따로 매달리게 될 테니까요." (원문: "We must all hang together, or assuredly we shall all hang separately." — "hang"의 이중 의미를 살린 말장난)

John Adams (40세, 매사추세츠) — 독립의 가장 끈질긴 주창자. 아내 애비게일에게 보낸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7월 2일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기념비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오." (실제로는 4일이 기념일이 되었지만, 대륙회의가 독립을 결의한 날은 7월 2일이었습니다.) 훗날 2대 대통령.


말을 달린 사람 — Caesar Rodney

7월 1일, 델라웨어 대표단은 2대 2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시저 로드니(Caesar Rodney)**만이 찬성 쪽에 캐스팅 보트를 던질 수 있었지만, 그는 120km 떨어진 델라웨어의 자택에 있었고 얼굴에는 암종(피부암)을 앓아 스카프로 가리고 있었습니다.

소식을 들은 그는 비 내리는 밤에 말을 타고 필라델피아까지 달렸습니다. 7월 2일 아침, 부츠에 박차가 달린 채 의사당에 도착해 "찬성"을 던졌습니다.

오늘날 델라웨어 주의 25센트 동전 뒷면에는 그의 말 달리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서명의 대가 — 그 후 그들에게 벌어진 일

서명 후 그들에게 닥친 운명은 혹독했습니다.

5명은 영국군에 체포되어 고문당했습니다. 뉴저지 대표 Richard Stockton은 집에 쳐들어온 영국군에게 붙잡혀 감옥에서 혹독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재산은 몰수되었고 서재는 불탔습니다. 풀려난 뒤 건강이 무너져 1781년 사망.

12명은 집이 불타거나 약탈당했습니다. Francis Lewis(뉴욕)의 집은 약탈되고 부인은 영국군에 체포되어 수개월 간 가혹한 조건에서 수감되었습니다. 풀려났지만 건강이 무너져 곧 사망.

9명은 독립전쟁 중 또는 직후 사망했습니다. 전사하거나 전쟁의 여파로 병사한 경우입니다.

아들을 잃은 사람들. John Witherspoon(뉴저지, 프린스턴 총장)은 장남이 저먼타운 전투에서 전사했습니다. Abraham Clark(뉴저지)의 두 아들은 영국군에 포로로 잡혔고, 악명 높은 감옥선에서 학대당했습니다.

그들의 서명은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건 약속이었던 것입니다.

⚠️ 인터넷에는 "서명자 56명 전원이 파탄을 맞았다"는 이메일/밈이 오래 돌았지만, 이는 과장된 내용입니다. 다수는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일부(Jefferson, Adams, Franklin)는 국가의 최고위직에 올랐습니다. 그럼에도 상당수가 실제로 큰 희생을 치른 것은 사실입니다.


유일한 가톨릭, 최장수 — Charles Carroll

메릴랜드 대표 **찰스 캐럴(Charles Carroll of Carrollton)**은 서명자 56명 중 유일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당시 식민지 대부분에서 가톨릭은 공직 진출이 금지되어 있었기에, 그의 서명은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가장 오래 산 서명자였습니다. 1832년 11월 14일, 95세로 사망했을 때, 그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마지막 생존자였습니다. 철도가 놓이고 증기기관이 달리는 19세기를 그의 눈으로 봤습니다.


같은 날 세상을 떠난 두 사람

1826년 7월 4일 — 독립선언 50주년 기념일.

그날, 토머스 제퍼슨이 버지니아 몬티첼로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같은 날, 몇 시간 뒤, 존 애덤스가 매사추세츠 퀸시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애덤스의 마지막 말은 이렇게 전해집니다.

"Thomas Jefferson survives." (토머스 제퍼슨은 살아 있다.)

그는 제퍼슨이 이미 몇 시간 전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정치적 라이벌로 수십 년을 싸웠고, 말년에 편지로 화해했던 두 건국의 아버지가 — 자신들이 서명한 그 선언서의 50주년 바로 그날, 몇 시간 차이로 함께 떠난 것입니다.

당시 미국인들은 이 우연을 신의 섭리의 증표로 받아들였습니다.


56개의 이름이 남긴 것

독립선언서 본문은 프랭클린, 애덤스, 제퍼슨 같은 이름이 유명합니다. 그러나 문서 아래쪽엔 55개의 다른 이름이 더 있습니다 — 대부분 오늘날 기억되지 않는 평범한 변호사, 상인, 농장주, 목사, 의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유명해지려고 서명한 게 아니었습니다. 붙잡히면 교수형인 그 종이 위에 이름을 적을 때, 그들에겐 실패할 가능성이 더 커 보였습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우리의 생명과 재산과 신성한 명예를 건다."

그 서약은 비유가 아니었습니다. 56명 중 상당수가 실제로 그 세 가지 중 일부 또는 전부를 치렀습니다.

25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그 이름들 중 어느 하나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그들이 건 "명예"는 끝까지 지켜졌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건 일자: 1776년 7월 4일 본문 채택 / 대부분 서명 1776년 8월 2일 | 장소: 펜실베이니아 주의사당(현 독립기념관), 필라델피아 | 총 서명자: 56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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