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포성 — 1861년 4월 12일, 남북전쟁이 시작되다
1861년 4월 12일 새벽 4시 30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 포탄이 날아들었습니다. 포트 섬터를 향한 남부 연합군의 첫 발포 — 그것이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미국인을 죽인 전쟁의 시작이었습니다.
끝을 알면 처음이 보인다
우리는 이미 이 전쟁의 끝을 알고 있습니다. 1865년 4월 9일, 리 장군이 애포매턱스의 조용한 응접실에서 항복했고, 62만 명이 넘는 미국인이 전사한 4년간의 전쟁이 막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그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끝이 조용했다면, 시작은 포성이었습니다.
1861년 4월 12일, 새벽 4시 30분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 바다 위에 홀로 서 있는 작은 요새, 포트 섬터(Fort Sumter). 안에는 79명의 연방군 병사들이 있었습니다. 지휘관은 메이저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 — 켄터키 출신의 노련한 군인이었습니다.
새벽이 채 밝기도 전인 4시 30분, 남부 연합군의 포탄이 포트 섬터를 향해 날아들었습니다. 34시간에 걸친 포격이 시작되었고, 연방군은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식량도 바닥났고, 구원병은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날인 4월 13일, 앤더슨 소령은 항복했습니다.
전쟁이 불가피했던 이유
포트 섬터의 포격은 갑작스러운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친 갈등이 쌓이고 쌓여 폭발한 결과였습니다.
1860년 11월,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남부 7개 주가 즉각 연방 탈퇴를 선언했습니다. 노예제 확산을 반대하는 공화당 대통령이 선출되었다는 이유만으로. 탈퇴한 주들은 **남부 연합(Confederate States of America)**을 결성하고, 제퍼슨 데이비스를 대통령으로 추대했습니다.
문제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에 있는 포트 섬터였습니다. 연방 정부 소유의 요새가 탈퇴한 주의 영토 한가운데 있었으니까요. 남부는 이 요새를 "침략의 상징"으로 봤고, 북부는 "연방의 영토"라 주장했습니다.
링컨은 취임 직후 포트 섬터에 식량만 보내겠다고 남부에 통보했습니다. 남부 연합 지도부는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요새를 그냥 내버려두면 연방의 권위를 인정하는 꼴이 됩니다. 결국 보포리가르 장군은 공격 명령을 내렸습니다.
아이러니 — 스승과 제자
이 전쟁에는 씁쓸한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포트 섬터 공격을 지휘한 남부 연합의 P.G.T. 보포리가르 장군은 웨스트포인트에서 요새 방어를 가르쳤습니다. 그의 지도 교수가 바로 로버트 앤더슨 소령 — 포트 섬터를 지키다 항복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제자가 스승이 지키는 요새를 포격했습니다.
그리고 앤더슨 소령 자신도 켄터키 출신으로, 남부 생활을 잘 알고 노예를 소유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연방에 충성했습니다.
남북전쟁은 단순한 '남부 대 북부'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가족이 갈라지고, 스승과 제자가 총을 겨눈 전쟁이었습니다.
링컨의 선택
포트 섬터 함락 소식이 전해지자 링컨은 즉각 행동에 나섰습니다. 4월 15일, 그는 75,000명의 자원병을 소집하는 포고령을 발표했습니다.
이 결정이 또 다른 파장을 불렀습니다.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아칸소 — 당초 중립을 지키던 남부 주들이 이 포고령에 반발해 연방을 탈퇴했습니다. 남부 연합은 7개에서 11개 주로 불어났습니다.
한 번의 포격이, 한 번의 포고령이 나라를 둘로 가른 것입니다.
이상한 전투 — 사상자가 없었다
포트 섬터 전투에는 기묘한 사실이 있습니다. 34시간 동안 포탄이 쏟아졌지만, 전투 중 사망한 연방군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사상자는 항복 후 국기를 내리는 예포(禮砲)를 쏘다가 우발적 폭발로 2명이 숨졌을 뿐입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린 전쟁이 시작되는 방식치고는,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첫 포성이 남긴 것
포트 섬터의 포성은 이후 4년간 62만 명을 죽였습니다. 전쟁이 끝났을 때 미국 남성 인구의 약 2%가 사망한 상태였습니다. 지금의 미국 인구로 환산하면 약 600만 명에 해당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나 그 전쟁이 남긴 것도 있습니다. 수정헌법 13조 — 노예제 전면 폐지. 수정헌법 14조 —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 수정헌법 15조 — 인종에 관계없이 투표권 보장.
1861년 4월 12일 새벽 4시 30분의 첫 포성은, 어쩌면 더 나은 미국을 향한 가장 고통스럽고 긴 여정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사건 연도: 1861년 4월 12일 | 장소: 사우스캐롤라이나 찰스턴 항구, 포트 섬터 | 지휘관: 메이저 로버트 앤더슨 (연방군), 준장 P.G.T. 보포리가르 (남부 연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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