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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이 전쟁을 앞당겼다 —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18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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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명이 전쟁을 앞당겼다 —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1859년)

1859년, 존 브라운이 21명을 이끌고 연방 무기고를 점령했다. 48시간 만에 체포됐다. 그러나 그 48시간이 남북전쟁을 앞당겼다.

2026년 4월 20일1분 읽기

존 브라운의 하퍼스 페리 습격

계획

존 브라운은 광신도가 아니었다. 노예제를 증오하는 아버지이자 사업가였다.

1859년 10월 16일 밤, 그는 21명을 이끌고 버지니아주 하퍼스 페리의 연방 무기고를 습격했다. 흑인 5명을 포함한 소규모 부대였다.

계획은 단순했다. 무기를 탈취한다. 노예들이 봉기한다. 남부 전체가 무너진다.


36시간

처음 몇 시간은 성공처럼 보였다. 무기고를 점령했다. 인질도 잡았다.

그러나 노예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민병대가 몰려왔다. 브라운과 생존자들은 소방서 건물에 포위됐다.

다음 날 아침, 로버트 E. 리 대령이 이끄는 해병대가 문을 부쉈다. 존 브라운은 체포됐다.


재판

재판은 10일 만에 끝났다.

반역죄, 살인죄, 노예 반란 교사죄.

유죄. 교수형.

1859년 12월 2일, 존 브라운이 교수대에 섰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남겼다.

"나는 이 죄악으로 가득한 나라의 죄가 오직 피로만 씻길 수 있다고 확신한다."


두 개의 미국

북부는 그를 순교자로 불렀다. 남부는 공포에 떨었다.

"북부 전체가 우리를 노예와 함께 죽이려 한다." 남부의 신문들이 외쳤다.

1년 후, 링컨이 당선됐다. 6개 주가 탈퇴했다. 전쟁이 시작됐다.

남북전쟁 내내 북군은 행진하며 노래를 불렀다.

"존 브라운의 시신은 무덤 속에 누워 있지만, 그의 영혼은 행진한다."


습격일: 1859년 10월 16일 | 처형: 1859년 12월 2일 | 병력: 21명 | 인질: 60여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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