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극장의 밤 — 1865년 4월 14일, 링컨이 총에 맞은 날
남북전쟁이 끝난 지 5일째, 링컨은 아내와 함께 연극을 보러 갔습니다. 무대 위에서는 웃음이 터지고 있었고, 대통령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 10시 15분, 총성이 울렸습니다.
전쟁이 끝난 그 주
1865년 4월 9일, 애포매턱스 법원 청사. 리 장군이 그랜트 장군에게 항복했습니다. 4년의 전쟁이 사실상 끝난 순간이었습니다.
닷새 뒤, 1865년 4월 14일 — 성금요일(Good Friday)이었습니다. 링컨은 그날 아침 각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젯밤 이상한 꿈을 꿨네. 배를 탔는데, 어두운 해안으로 빠르게 떠내려가고 있었어." 각료 중 누군가 불안해했지만, 대통령은 웃어넘겼습니다.
저녁에 영부인 메리와 함께 포드극장에서 희극 〈우리 미국 사촌(Our American Cousin)〉을 보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원래 그랜트 장군 부부도 함께 가기로 했지만, 그랜트 부인이 메리와 사이가 좋지 않아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이 사소한 일정 변경이, 역사를 바꿨습니다.
대통령석의 빈 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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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8시 30분쯤, 대통령 부부가 극장에 도착했습니다. 관객들이 일어나 박수를 쳤고, 오케스트라가 〈헤일 투 더 치프(Hail to the Chief)〉를 연주했습니다. 링컨은 2층 박스석의 흔들의자에 앉았습니다.
문제는 경호였습니다. 대통령 경호를 맡은 경관 **존 파커(John Parker)**는 연극이 지루해지자 박스석을 벗어났습니다. 일설에는 옆 술집에서 술을 마셨다고도 합니다. 대통령의 등 뒤 문은 무방비 상태로 열려 있었습니다.
그 문을 통해 한 남자가 들어왔습니다.
존 윌크스 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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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윌크스 부스(John Wilkes Booth), 26세. 당대 가장 유명한 배우 중 한 명이었고, 포드극장의 단골 출연자였습니다. 극장의 구조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죠.
그는 메릴랜드 출신의 열렬한 남부 지지자였습니다. 노예제 폐지와 남부의 패배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원래 계획은 링컨을 납치해 남부 포로들과 교환하는 것이었지만, 남부가 항복하자 계획을 살인으로 바꿨습니다.
부스의 계획은 단순한 암살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날 밤, 같은 시간에 링컨·부통령 앤드루 존슨·국무장관 윌리엄 수어드를 동시에 제거해 연방 정부의 수뇌부를 마비시키려 했습니다. 공범들에게 각자의 임무가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밤 10시 15분
무대에서 배우 해리 호크가 유명한 대사를 날렸습니다. "Well, I guess I know enough to turn you inside out, old gal — you sockdologizing old man-trap!" 관객석이 웃음으로 뒤집어졌습니다.
바로 그 순간, 부스가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단발식 데린저 권총. 거리는 1미터도 안 되었습니다. 총알은 링컨의 왼쪽 귀 뒤에서 머리를 관통했습니다.
메리가 비명을 질렀습니다. 함께 있던 헨리 래스본 소령이 부스를 붙잡으려 했지만, 부스는 단검으로 그의 팔을 찔렀습니다. 그리고 박스석 난간에서 무대로 뛰어내렸습니다 — 약 3.5미터 높이였습니다.
착지할 때 부스의 박차가 국기에 걸려 왼쪽 다리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무대 한가운데 서서 관객을 향해 외쳤습니다.
"Sic semper tyrannis!" (폭군에겐 언제나 이와 같이!)
버지니아주의 모토이자,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찔렀을 때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었습니다. 부스는 절뚝거리며 뒷문으로 빠져나가 미리 준비된 말을 타고 도주했습니다.
길 건너편의 마지막 밤
의사들이 달려왔지만 총알을 꺼낼 수는 없었습니다. 링컨은 키가 너무 커서 극장 좌석에 눕힐 수 없었고, 의사들은 그를 길 건너 **피터슨 하우스(Petersen House)**의 하숙집 뒷방으로 옮겼습니다. 침대가 너무 작아서 대통령을 대각선으로 눕혀야 했습니다.
밤새도록 각료와 의사들이 그 작은 방을 들락거렸습니다. 메리는 통곡했고, 장남 로버트는 굳은 얼굴로 서 있었습니다.
1865년 4월 15일 오전 7시 22분, 에이브러햄 링컨이 숨을 거두었습니다. 향년 56세.
국방장관 에드윈 스탠턴이 침묵 속에서 한마디를 남겼습니다.
"Now he belongs to the ages." (이제 그는 역사에 속하노라.)
나머지 표적들
그날 밤 부스의 공범 루이스 파월은 수어드 국무장관의 집을 습격해 그를 칼로 난자했습니다. 수어드는 턱뼈 수술 후 회복 중이었는데, 그 금속 부목이 목을 보호하는 바람에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부통령 암살 임무를 맡은 조지 애처로트는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하고 술집에서 술만 마시다 도망쳤습니다.
세 표적 중 한 명만 죽었지만, 그 한 명이 미국의 대통령이었습니다.
12일간의 추적
부스는 메릴랜드와 버지니아의 남부 동조자들 사이에 숨었습니다. 연방군 1만여 명이 그를 추적했고, 현상금 10만 달러(오늘날 약 200만 달러)가 걸렸습니다.
4월 26일, 버지니아 캐럴라인 카운티의 한 담배 창고. 연방 기병대가 부스와 공범 데이비드 헤럴드를 포위했습니다. 헤럴드는 투항했지만 부스는 거부했습니다. 군인들은 창고에 불을 질렀고, 불길이 타오르는 가운데 보스턴 코벳 병장이 부스에게 총을 쐈습니다. 명령을 어긴 발포였습니다.
부스는 숨을 거두기 직전 자신의 손을 보며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쓸모없어... 쓸모없어..."
그날 밤이 남긴 것
링컨의 관을 실은 열차는 워싱턴에서 일리노이 스프링필드까지 2,700킬로미터를 7일에 걸쳐 이동했습니다. 철길을 따라 수백만 명이 모자를 벗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부통령이었던 앤드루 존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지만, 그는 링컨이 아니었습니다. 재건(Reconstruction) 정책은 표류했고, 해방된 흑인들이 시민권을 완전히 얻기까지는 이후 100년이 더 걸렸습니다.
만약 링컨이 4년을 더 살았다면, 미국의 상처는 어떻게 아물었을까요?
그 질문에 대한 답은 1865년 4월 14일 밤 10시 15분, 포드극장의 어두운 박스석에서 영원히 사라졌습니다.
사건 일자: 1865년 4월 14일 밤 10시 15분 (사망: 4월 15일 오전 7시 22분) | 장소: 워싱턴 D.C. 포드극장 | 암살범: 존 윌크스 부스 (26세,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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