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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든 여인 — 자유의 여신상 제막식 (1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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횃불을 든 여인 — 자유의 여신상 제막식 (1886년)

프랑스에서 21년에 걸쳐 만들어진 선물. 1886년 10월 28일, 비 내리는 뉴욕 항구에서 가장 미국적인 상징이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2026년 4월 26일3분 읽기

프랑스에서 온 아이디어

1865년, 프랑스 베르사유 인근의 한 만찬 자리.

법학자 에두아르 드 라불레가 입을 열었다. "미국이 노예제를 끝냈다. 우리도 그들에게 무언가를 보내야 한다."

자리에 있던 32세의 조각가 프레데리크 오귀스트 바르톨디가 그 말을 들었다.

그는 그 말을 21년간 잊지 않았다.


21년의 공사

1875년, 프랑스에서 본격 제작 시작.

바르톨디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델로 했다. 횃불을 든 자세, 머리에 쓴 7개의 빛 — 7개 대륙을 향한 자유의 빛을 의미했다.

내부 골격은 귀스타브 에펠이 설계했다 (그렇다, 에펠탑의 그 에펠). 강철 격자가 동판 외피를 떠받치는 구조. 4년 뒤 그가 만들 에펠탑의 시범 작품이었다.

자금은 프랑스 국민이 모았다. 학교 어린이들이 동전을 보냈다. 1884년, 동상은 파리에서 완성됐다.


받침대를 못 만든 미국

문제는 미국 쪽이었다.

미국은 동상이 설 받침대(pedestal) 비용을 책임지기로 했다. 그런데 모금이 진행되지 않았다.

  • 뉴욕 시: "우리 돈으로 못 한다."
  • 의회: "이건 사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다."
  • 록펠러, 카네기 같은 부자들: 침묵

동상은 파리에서 350개의 부품으로 분해되어 미국으로 운송됐다. 1885년 6월 도착. 그러나 세울 곳이 없었다.


신문 발행인이 구한 동상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 헝가리 출신 이민자, 〈뉴욕 월드〉 발행인.

그는 자신의 신문에 캠페인을 시작했다. "단 1센트라도 보내라. 보내준 모든 사람의 이름을 신문에 싣겠다."

5개월 만에 12만 명이 10만 1천 달러를 모았다. 대부분이 1달러 미만의 소액 기부였다. 이민자, 노동자, 어린이들이 보냈다.

자유의 여신상은 이민자들의 돈으로 세워졌다. 곧 그들을 환영하게 될 동상을, 그들 자신이 세웠다.


1886년 10월 28일

비가 내렸다.

뉴욕 항구에 100만 명이 모였다. 클리블랜드 대통령, 프랑스 사절단, 바르톨디 본인.

베일이 내려질 때,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시위를 벌였다. "여성이 투표도 못 하는데, 자유를 상징하는 여성 동상이 무슨 의미인가?"

연단에 단 한 명의 여성도 초대되지 않았다. 동상은 여성이었다.


거기 새겨진 시

1903년, 동상 받침대 안쪽에 청동판이 부착됐다.

유대계 미국 시인 에마 라자루스가 1883년에 쓴 시 〈새로운 거인(The New Colossus)〉의 일부였다.

지치고, 가난하고, 자유를 갈망하며 웅크린 너의 군중을 내게 보내라. 너의 풍요로운 해안에서 거부당한 비참한 자들을. 집 없이 폭풍에 휩쓸린 자들을 내게 보내라. 나는 황금의 문 옆에서 등불을 들어 올린다.

라자루스는 시를 쓴 지 4년 뒤, 38세에 사망했다. 그녀는 자신의 시가 미국의 영혼을 정의하는 문구가 될 줄 몰랐다.


횃불의 의미

여신상이 세워진 1886년은 길디드 에이지의 절정.

  • 헤이마켓 사건이 같은 해 5월에 일어났다
  • 카네기 스틸의 노동자 학살 6년 전
  • 엘리스 섬 이민 관문 개장 6년 전

자유의 여신상은 길디드 에이지의 희망과 위선을 동시에 상징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약속된 자유. 그들을 착취하는 시스템 위에 세워진 자유.

오늘도 그 둘은 함께 서 있다.


제작 시작: 1875년 (프랑스) | 완성: 1884년 (파리) | 미국 도착: 1885년 6월 | 제막식: 1886년 10월 28일 | 높이: 받침대 포함 93m | 무게: 225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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