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모도어 — 코넬리우스 밴더빌트와 미국 철도제국 (1865년)
학교를 6학년에 그만둔 소년이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 됐다. 증기선으로 시작해 철도로 마감한 사업가, "제독"이라 불린 사나이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16세, 100달러
1810년,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
밴더빌트는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학교는 6학년에 그만뒀다. 글도 평생 어색했다.
16세, 어머니에게 100달러를 빌렸다. 작은 보트 한 척을 샀다. 뉴욕 항을 오가는 화물 운반업. 시작이었다.
증기선의 황제
1820~1850년대, 그는 증기선으로 미국 동부 해안을 지배했다.
- 운임 인하 → 경쟁자 파산 → 자기 가격으로 회복
- 정부 보조금을 받는 회사보다 더 싸게 운영
- 캘리포니아 골드러시 시기, 니카라과 지협을 통한 항로 개척
당시 신문은 그를 "Commodore(코모도어, 제독)"이라 불렀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별명을 좋아했다.
1850년대 말, 그의 재산은 1,100만 달러. 미국에서 손꼽는 부자였다.
60세에 시작한 두 번째 인생
1862년, 70세 직전. 그는 증기선 사업을 모두 정리했다.
이유: 철도가 미래였다.
뉴욕 할렘 철도, 허드슨 강 철도, 뉴욕 센트럴 철도. 차례로 인수·합병했다. 1869년에는 뉴욕 시카고를 잇는 철도 노선을 손에 쥐었다.
70세 노인이 미국 철도 산업의 절반을 새로 만들었다.
그랜드 센트럴
1871년, 뉴욕 맨해튼 한복판에 그가 세운 것: 그랜드 센트럴 디포.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기차역. 오늘날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의 전신이다.
뉴욕은 그 순간 미국 운송의 중심이 됐다. 이전까지는 보스턴, 필라델피아와 경쟁하던 도시였다.
윌리엄 H. 밴더빌트의 한 마디
1877년, 코넬리우스 밴더빌트 사망. 향년 82세.
재산: 1억 달러. 미국 GDP의 1/87. 당시 미국 정부 1년 예산의 두 배.
그의 아들 윌리엄이 가업을 이어받았다. 8년 뒤 윌리엄도 사망. 그 시점 가문 재산은 2억 달러로 두 배가 됐다.
언론이 윌리엄에게 물었다. "대중을 위해 운임을 낮출 의향이 있습니까?"
그의 대답이 길디드 에이지를 정의했다.
"The public be damned." "대중 따위 알 바 아니다."
강도 귀족 4인방 완성
밴더빌트(증기선·철도) → 이미 죽었지만 운송 인프라의 토대를 놓은 자
이후 등장한 인물:
- 록펠러 (석유, 1870~)
- 카네기 (철강, 1880~)
- J.P. 모건 (금융, 1871~)
이 네 사람이 길디드 에이지의 자본가 4인방. 그러나 가장 먼저 시작한 사람은 밴더빌트였다.
탄생: 1810년 | 첫 자본금: 100달러 (1827) | 사망: 1877년 | 재산: 약 1억 달러 (현재 기준 2,300억 달러) | 별명: "The Commod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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