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열 살 소녀가 하루 12시간을 섰다 — 루이스 하인의 방적공장 사진이 미국을 바꿨다
1908년 노스캐롤라이나 방적공장. 루이스 하인의 카메라가 포착한 한 장의 사진이 30년 후 미국의 아동노동법을 완성했다.
한 장의 사진이 미국을 바꿨다 #002
열 살 소녀가 하루 12시간을 섰다
1908년 11월, 노스캐롤라이나 랭커스터 면화 방적공장.
루이스 하인(Lewis Hine)은 카메라를 숨기고 공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자신을 "안전 점검관"이라고 소개했다. 거짓말이었다. 그의 진짜 임무는 미국 전역의 아동 노동 현장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그날 그의 렌즈 앞에 섰던 아이의 이름은 새디 파이퍼(Sadie Pfeifer). 나이는 열 살이었다.
새디는 발이 닿지 않는 방적 기계 옆에 서 있었다. 두 손은 실타래를 잡고, 눈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렵지도, 부끄럽지도 않은 눈빛이었다. 그것이 그 아이의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하인은 왜 공장에 들어갔나
루이스 하인은 원래 사회학 교사였다. 1904년부터 **전국아동노동위원회(National Child Labor Committee, NCLC)**의 조사 사진가로 고용되어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당시 미국에는 공장, 광산, 농장에서 일하는 16세 미만 아이가 200만 명 이상이었다. 하루 10~14시간 노동, 주 6일 근무, 월급은 성인의 4분의 1 이하. 연방법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의 노동은 "가족의 생계를 돕는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졌다.
하인은 사진이 말해줄 것이라고 믿었다.
"숫자로는 사람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 아이의 눈을 보면 달라질 수 있다."
그는 공장주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위장을 했다. 안전 점검관, 성경 판매원, 산업 사진가. 카메라는 코트 속에 숨겼고, 아이들의 키를 단추 위치로 측정해 나이를 추정했다.
사진이 세상에 나왔을 때
1908년부터 1918년까지, 하인은 5,000장이 넘는 사진을 찍었다.
새디 파이퍼의 사진은 NCLC 소책자와 순회 전시회를 통해 전국에 배포됐다. 신문들이 1면에 실었다. 교회 주보에 붙었다. 학교 복도 벽에 걸렸다.
뉴욕 이브닝 포스트는 이렇게 썼다.
"이 사진들은 어떤 연설보다 강력하다. 이 아이들의 눈을 보라."
의회에서는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남부 주들은 맹렬히 반발했다. "우리 공장을 북부 급진주의자들이 간섭할 권리가 없다." 공장주들은 "아이들이 원해서 일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여론은 서서히 바뀌고 있었다.
1916년, 최초의 연방 아동노동법 **키팅-오웬법(Keating-Owen Act)**이 통과됐다. 14세 미만 아동의 주간 통상에 관련된 제품 생산 참여를 금지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불과 2년 뒤 연방대법원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30년 후, 법이 완성됐다
1938년 6월 25일.
루즈벨트 대통령이 **공정근로기준법(Fair Labor Standards Act, FLSA)**에 서명했다.
- 16세 미만 아동의 공장·광산 노동 전면 금지
- 18세 미만 위험 직종 금지
- 주당 최대 노동시간 44시간 규정
- 최저임금 시간당 25센트 도입
루이스 하인이 새디 파이퍼를 찍은 지 30년이 지나 있었다.
하인은 법 통과 후 2년이 지난 1940년, 가난 속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자신의 사진이 만든 세상을 보았지만, 살아 있는 동안 그 공로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망 당시 그는 집을 잃을 위기에 처해 있었다.
사진은 지금 어디에 있나
루이스 하인의 원본 사진 5,000장은 현재 미국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인쇄물 및 사진 부문에 소장되어 있다. 누구나 무료로 온라인에서 열람할 수 있다.
새디 파이퍼가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 그 후의 삶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음 회 #003 — 1936년, 캘리포니아 완두콩 농장. 도로시아 랭의 카메라 앞에 선 한 어머니의 눈빛이 뉴딜 정책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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