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사람 먼저" — 얼어붙은 포토맥 강에서 구명줄을 양보한 남자, 알랜드 윌리엄스 이야기
1982년 워싱턴 D.C.에서 추락한 에어 플로리다 90편의 생존자 알랜드 D. 윌리엄스 2세는 구조 헬기가 내려준 구명줄을 다섯 번이나 다른 생존자에게 양보한 뒤, 끝내 차가운 강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의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여섯 번째 승객"은 사후에야 미국 전역을 울린 진정한 영웅으로 기억되었습니다.
1982년 1월 13일, 워싱턴 D.C.를 덮친 눈보라
1982년 1월 13일 수요일, 미국 수도 워싱턴 D.C.는 기록적인 눈보라에 갇혀 있었습니다. 기온은 영하를 밑돌았고, 포토맥 강 위에는 얼음 덩어리들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오후 4시, 퇴근길 차량들로 가득 찬 14번가 다리 위로, 이륙한 지 불과 30초 만에 에어 플로리다 90편 보잉 737 여객기가 추락했습니다.
비행기는 다리 위의 자동차 여러 대를 들이받은 뒤 얼어붙은 포토맥 강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탑승자 79명 중 단 6명만이 물 위에 떠오른 동체 꼬리 부분을 붙잡고 살아 있었습니다. 수온은 거의 0°C. 저체온증이 몇 분 안에 그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구조 헬기, 그리고 "여섯 번째 승객"
미 공원경찰(US Park Police) 소속 헬기 '이글 원(Eagle One)'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추락 약 20분 뒤였습니다. 조종사 도널드 어셔(Donald Usher)와 부조종사 진 윈저(Gene Windsor)는 헬기에서 구명 밧줄과 링을 내려보냈습니다.
물속에서 동체 잔해를 붙잡고 있던 6명의 생존자 중, 한 남자가 유독 눈에 띄었습니다. 대머리에 콧수염을 기른 중년 남성. 그는 헬기가 내려준 구명줄을 잡았지만, 자기가 올라가는 대신 옆에 있던 다른 생존자에게 줄을 건넸습니다.
헬기는 그 생존자를 강둑으로 옮긴 뒤 다시 돌아왔습니다. 다시 줄을 내렸고, 그 남자는 또다시 다른 사람에게 줄을 넘겼습니다. 이 일이 다섯 번 반복되었습니다. 매번 그는 자신의 차례를 양보했습니다. 승무원 켈리 던컨(Kelly Duncan), 승객 조 스틸리(Joe Stiley), 프리실라 티라도(Priscilla Tirado)… 한 명, 한 명이 그의 손에서 구명줄을 받아 목숨을 건졌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을 보낸 뒤, 헬기가 마지막으로 그를 위해 돌아왔을 때, 그 남자는 이미 차가운 강물 아래로 가라앉은 뒤였습니다.
그의 이름은 알랜드 D. 윌리엄스 2세
사고 직후, 언론은 그를 "여섯 번째 승객(The Sixth Passenger)"이라고만 불렀습니다. 그가 누구인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사람이 없었으므로 — 정확히 말하면, 그가 살려준 사람들조차 혼란 속에서 그의 이름을 알지 못했습니다.
수일 뒤, 수사관들이 그의 신원을 확인했습니다. 알랜드 D. 윌리엄스 2세(Arland D. Williams Jr.), 당시 46세.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근무하던 연방은행 검사관(federal bank examiner)이었습니다. 그는 출장을 마치고 플로리다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윌리엄스는 군 복무 경력이 있었고, 베트남전에도 참전한 적이 있었지만, 특별한 영웅담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평범한 중년의 공무원. 이혼을 겪은 두 아이의 아버지. 그저 집으로 돌아가려던 한 사람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당시 현장에 있던 구조대원들과 목격자들은 한결같이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왜 매번 양보했을까?"
헬기 조종사 도널드 어셔는 훗날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시간이 없다는 것을. 자기 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그런데도 그는 매번 줄을 옆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그건 한 번의 충동이 아니라, 반복된 선택이었습니다."
한 번의 용기가 아니라 다섯 번의 의지적 결단이었다는 점이, 이 이야기를 더욱 가슴 아프고도 위대하게 만듭니다. 매 순간 그는 자신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옆에서 더 약해져 가는 사람을 먼저 보냈습니다.
미국이 그를 기억하는 방법
알랜드 윌리엄스의 희생은 미국 전역에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 14번가 다리 개명: 1983년, 워싱턴 D.C.의 14번가 다리는 공식적으로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 메모리얼 브리지(Arland D. Williams Jr. Memorial Bridge)"**로 개명되었습니다. 미국에서 다리가 민간인의 이름으로 명명되는 것은 극히 드문 일입니다.
- 학교 명명: 그의 고향 일리노이주 매태사(Mattoon) 근처에는 그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가 세워졌습니다.
- 국가 시민 영웅 표창: 미국 시민용기협회(Carnegie Hero Fund) 등에서 사후 영웅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생존자 프리실라 티라도는 수년 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물속에서 나를 바라보던 그 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눈빛이 '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평생 그에게 빚진 사람으로 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사람의 위대한 선택
알랜드 윌리엄스는 소방관도, 군인도, 훈련받은 구조대원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서류 가방을 든 채 출장에서 돌아오던 평범한 46세의 남자였습니다.
하지만 얼어붙은 강물 위에서, 죽음이 초 단위로 다가오는 그 순간, 그는 인간이 내릴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선택을 다섯 번 연속으로 해냈습니다.
구명줄은 매번 그의 손에 쥐어졌습니다. 매번 그는 그것을 놓아주었습니다.
"다른 사람 먼저."
그 짧은 문장 속에, 한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알랜드 윌리엄스를 기억해야 합니다. 영웅은 특별한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특별한 순간에 내리는 선택에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가 건넨 구명줄은 다섯 사람의 생명이 되었고, 그의 이름은 다리가 되어 오늘도 포토맥 강 위에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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