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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에게 먼저 주세요" — 얼어붙은 포토맥 강에서 다섯 번의 구명줄을 양보한 남자, 알랜드 윌리엄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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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에게 먼저 주세요" — 얼어붙은 포토맥 강에서 다섯 번의 구명줄을 양보한 남자, 알랜드 윌리엄스 이야기

1982년 1월, 워싱턴 D.C.의 포토맥 강에 추락한 에어 플로리다 90편. 얼어붙은 물속에서 구명줄이 내려올 때마다 다른 생존자에게 양보하고 끝내 홀로 가라앉은 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2026년 5월 25일3분 읽기

1982년 1월 13일, 눈보라 속의 이륙

1982년 1월 13일 오후 4시 1분, 워싱턴 D.C.의 내셔널 공항에서 에어 플로리다 90편이 이륙했습니다. 보잉 737 여객기에는 승객 74명과 승무원 5명, 총 79명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날 워싱턴 일대는 극심한 눈보라에 휩싸여 있었고, 공항은 거의 마비 상태였습니다.

이륙 직후,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날개에 쌓인 얼음과 엔진 결빙으로 인해 비행기는 충분한 양력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륙한 지 불과 30초 만에 기체는 고도를 잃기 시작했고, 14번가 다리의 자동차 행렬을 스치며 얼어붙은 포토맥 강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다리 위에서는 차량 4대가 파손되었고, 다리 위의 행인 4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강물 속에서는 비행기가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얼음물 위의 여섯 사람

추락 현장에서 기적적으로 여섯 명의 생존자가 얼음 조각과 기체 잔해를 붙잡고 물 위에 떠올랐습니다. 강물의 온도는 섭씨 영하에 가까웠고,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길어야 몇 분에 불과했습니다. 구조 헬기가 현장에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마침내 미국 공원경찰의 헬기 '이글 원(Eagle One)'이 현장 상공에 나타났습니다. 조종사 도널드 어셔(Donald Usher)와 부조종사 진 윈도저(Gene Windsor)는 구명줄과 구명 링을 물속 생존자들에게 내렸습니다.

그때, 물속에서 하나의 장면이 반복되기 시작했습니다.

콧수염을 기른 한 남자—후에 46세의 은행 감사관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Arland D. Williams Jr.)**로 밝혀진 인물—가 매번 자신에게 내려온 구명줄을 옆 사람에게 건넸습니다.

다섯 번의 양보

헬기가 첫 번째로 구명 링을 내렸을 때, 윌리엄스는 그것을 붙잡았다가 옆에 있던 중상의 승객에게 넘겼습니다. 헬기는 그 승객을 강둑으로 끌어올렸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두 번째로 구명줄이 내려왔을 때도, 윌리엄스는 같은 행동을 했습니다. 세 번째, 네 번째… 매번 줄이 내려올 때마다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생존자에게 줄을 건넸습니다. 승무원 켈리 던컨(Kelly Duncan), 승객 조 스틸리(Joe Stiley), 프리실라 티라도(Priscilla Tirado) 등이 하나씩 구조되었습니다.

헬기 조종사 어셔는 나중에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매번 돌아올 때마다 그는 줄을 다른 사람에게 건네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장 침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섯 번째 생존자가 구조된 뒤 헬기가 마지막으로 돌아왔을 때, 물속에 윌리엄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얼어붙은 강물 아래로 가라앉은 뒤였습니다. 차가운 물에 너무 오래 잠겨 있던 그의 몸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스스로 줄을 잡았다면, 살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 모두.

"물속의 남자(The Man in the Water)"

사고 직후,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생존자들은 "콧수염을 기른 남자가 계속 줄을 넘겨주었다"고만 증언했습니다. 언론은 그를 **"물속의 남자(The Man in the Water)"**라고 불렀습니다.

저명한 에세이스트 로저 로젠블렛(Roger Rosenblatt)은 타임(Time) 지에 같은 제목의 에세이를 기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자연의 무관심에 맞서 싸웠고, 자연은 보통 그렇듯 이겼다. 하지만 그 남자의 행위 속에서 우리는 자연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것을 보았다. 바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놓는 인간의 의지를."

수일 뒤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 일리노이주 출신, 46세, 애틀랜타의 한 은행에서 일하던 연방 감사관. 두 아이의 아버지. 그날 그는 업무차 플로리다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 이름이 새겨진 것들

미국 의회와 워싱턴 시민들은 그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비행기가 충돌했던 14번가 다리는 1983년, 공식적으로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 메모리얼 브리지(Arland D. Williams Jr. Memorial Bridge)"**로 개명되었습니다. 미국에서 개인의 이름을 딴 다리 중 가장 많은 사람이 매일 건너는 다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의 모교인 서던일리노이대학교 에드워즈빌(SIUE) 캠퍼스에도 기념비가 세워졌으며, 미국 공원경찰 역시 그에게 특별 표창을 수여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알랜드 윌리엄스는 군인도, 소방관도, 경찰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고, 평범한 아버지였습니다. 그가 한 일은 단순했습니다. 줄을 잡고, 넘겨주는 것. 하지만 그 단순한 행위를 얼어붙은 강물 속에서, 자신의 생명이 꺼져가는 것을 느끼면서, 다섯 번 반복한 사람은 역사상 그 한 명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영웅이란 거창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때로 영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자신의 차례를 주장하지 않는 것—으로 완성됩니다.

포토맥 강 위의 그 다리를 건널 때, 누군가는 아직도 그의 이름을 읽습니다. 알랜드 D. 윌리엄스 주니어. 얼어붙은 물속에서 다섯 번의 생명을 살리고, 여섯 번째 줄을 기다리지 못한 남자. 그는 물속으로 사라졌지만, 그의 이야기는 40년이 넘도록 수면 위에 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느냐고요? 알랜드 윌리엄스에게 구명줄을 양보받은 다섯 사람에게 물어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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