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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캔자스 — 노예제가 국경을 넘었을 때 (18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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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캔자스 — 노예제가 국경을 넘었을 때 (1854년)

캔자스-네브래스카 법 하나가 통과됐다. 찬반 세력이 총을 들고 캔자스로 몰려들었다. 남북전쟁은 1861년이 아니라 1854년에 시작됐다.

2026년 4월 21일2분 읽기

피의 캔자스 — 노예제가 국경을 넘었을 때

법 하나

1854년 5월, 미국 의회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을 통과시켰다.

핵심 내용은 간단했다. 새로 편입되는 준주의 노예제 허용 여부를 주민 투표로 결정한다.

30년간 유지되던 미주리 협정선이 폐지됐다. 노예제가 북쪽으로 확장될 수 있는 문이 열렸다.


몰려드는 사람들

캔자스가 전장이 됐다.

노예제 찬성 세력이 미주리에서 국경을 넘어 들어왔다. 폐지론자들은 뉴잉글랜드에서 이주민을 조직해 보냈다.

양측은 총을 들었다. 1855년부터 1856년까지 캔자스 전역에서 민간인 학살과 마을 방화가 이어졌다.


포타와토미 학살

1856년 5월 밤, 존 브라운이 캔자스에 있었다.

노예제 찬성 세력이 로렌스 마을을 불태웠다는 소식을 들은 브라운은 아들 4명과 함께 포타와토미 크리크로 향했다.

노예제 찬성 정착민 5명을 끌어내 칼로 살해했다. 복수였다. 그리고 전쟁의 시작이었다.


워싱턴에서도 피가 났다

같은 달, 상원에서도 폭력이 터졌다.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찰스 섬너가 노예제를 맹비난하는 연설을 했다. 이틀 후, 사우스캐롤라이나 하원의원 프레스턴 브룩스가 의사당에서 섬너를 지팡이로 구타했다.

섬너는 3년간 상원에 나오지 못했다. 매사추세츠는 그의 빈 자리를 비워 뒀다. 항의의 표시였다.


두 개의 정부

캔자스에는 두 개의 주 정부가 생겼다. 하나는 노예제 찬성, 하나는 반대.

연방 정부는 어느 쪽도 인정하지 못했다. 내전은 5년 먼저 시작됐다.

1861년 전쟁이 공식적으로 선포됐을 때, 캔자스는 이미 7년째 싸우고 있었다.


캔자스-네브래스카 법: 1854년 5월 | 로렌스 방화: 1856년 5월 21일 | 포타와토미 학살: 1856년 5월 24일 | 사상자: 약 5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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