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동자가 보일 때까지 쏘지 마라 — 벙커힐 전투 (1775년 6월 17일)
1775년 6월 17일, 민병대 1,200명이 밤새 판 참호 위에서 영국 정규군 2,200명을 세 차례 격퇴했습니다. 영국군은 겨우 이겼지만 절반이 쓰러졌고, 영국 장군은 기록했습니다. 이런 승리를 몇 번 더 하면 끝장이다.
밤새 판 참호
1775년 6월 16일 밤, 프레스콧 대령이 이끄는 민병대 1,200명이 보스턴이 내려다보이는 브리즈힐 꼭대기에서 밤새 참호를 팠습니다. 삽질 소리가 아래까지 들렸지만, 영국군은 무시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영국 하우 장군이 올려다보니 어젯밤까지 맨땅이었던 언덕에 완전한 진지가 생겨 있었습니다. 하우는 정면 돌격을 명령했습니다.
"눈동자가 보일 때까지 쏘지 마라!"
프레스콧 대령이 참호 뒤에서 외쳤습니다. 총알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한 발 한 발이 아까웠습니다. 빨간 군복의 영국 정규군이 북소리에 맞춰 언덕을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1차 돌격. 민병대의 집중 사격에 영국군이 밀려 내려갔습니다. 2차 돌격. 또 밀렸습니다. 언덕은 빨간 군복으로 뒤덮였지만, 쓰러진 군복이었습니다. 3차 돌격. 마침내 민병대의 탄약이 바닥났고, 영국군이 언덕을 점령했습니다.
2,200명 중 1,054명
영국이 이겼습니다. 하지만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참전 2,200명 중 1,054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거의 절반. 장교 사상률은 더 높았습니다. 영국 장군 헨리 클린턴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런 승리를 몇 번 더 하면 영국의 아메리카 지배는 끝장난다."
농부가 정규군을 이긴 날
벙커힐은 기술적으로 영국의 승리였지만, 진짜 승자는 민병대였습니다. 군복도 없고 훈련도 부족한 농부들이 세계 최강 정규군의 절반을 쓰러뜨린 것입니다.
이날 이후 식민지 전역에 자신감이 퍼졌습니다. 우리도 싸울 수 있다. 정규군이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 독립전쟁 초기에 이 자신감이 없었다면, 전쟁은 시작도 되기 전에 끝났을 것입니다.
사건: 1775년 6월 17일 | 장소: 매사추세츠 찰스타운, 브리즈힐(벙커힐) | 영국군 사상자: 1,054명/2,200명 | 민병대 사상자: 약 45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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