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어만 할 줄 아는 프러시아 장교가 미국을 구했다 — 폰 슈토이벤 (1778년)
1778년 2월, 프리드리히 폰 슈토이벤이 밸리 포지에 도착했다. 영어를 몰랐다. 그러나 6주 만에 오합지졸 대륙군을 군대로 바꿨다.
2026년 4월 24일28개의 글

1778년 2월, 프리드리히 폰 슈토이벤이 밸리 포지에 도착했다. 영어를 몰랐다. 그러나 6주 만에 오합지졸 대륙군을 군대로 바꿨다.
2026년 4월 24일
1777년 겨울, 워싱턴의 군대가 밸리 포지에서 버텼다. 굶주림과 추위로 2천 명이 죽었다. 봄에 나온 군대는 달라져 있었다.
2026년 4월 22일
1776년 8월, 영국군이 뉴욕을 점령했다. 워싱턴의 군대는 포위 직전에 탈출했다. 독립전쟁이 끝나는 줄 알았다.
2026년 4월 22일
1776년 8월, 독립을 선언한 지 7주 만에 영국군 3만 2천 명이 상륙했다. 워싱턴은 뉴욕 전체를 잃었다.
2026년 4월 19일
1777년 새러토가 승리 이후, 프랑스는 미국의 편에 섰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파리에서 2년간 설득한 결과였다.
2026년 4월 19일
1776년 6월, 대륙회의는 33살 제퍼슨에게 초안을 맡겼다. 17일 만에 완성된 문장이 한 나라를 만들었다.
2026년 4월 19일
1775년 9월, 미국은 캐나다를 두 방향에서 동시에 쳤습니다. 아놀드는 메인 황야를 뚫었고, 몽고메리는 북쪽 요새를 하나씩 함락했습니다. 그리고 한 지휘관이 식량을 갖고 도망쳤습니다.
2026년 4월 19일
1775년 8월, 워싱턴은 흑인의 대륙군 입대를 금지했습니다. 석 달 후 영국군이 흑인에게 자유를 약속하자, 워싱턴은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2026년 4월 19일
1775년 9월, 베네딕트 아놀드는 1,100명을 이끌고 메인 황야를 뚫어 캐나다 퀘벡을 기습하려 했습니다. 지도는 틀렸고, 식량은 바닥났고, 강물은 역류했습니다. 350명만 살아남아 퀘벡 성벽 앞에 섰습니다.
2026년 4월 18일
1775년 8월, 조지 워싱턴은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습니다. 대륙군 전체 보유 화약으로 병사 한 명당 총알 9발밖에 쏠 수 없었습니다. 영국군이 알았다면 그날로 전쟁은 끝났습니다.
2026년 4월 18일
식민지가 평화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낸 지 한 달 후, 조지 3세는 그 편지를 읽지도 않고 식민지 전체를 반란 상태로 선언했습니다. 협상의 문은 닫혔습니다.
2026년 4월 18일
벙커힐 전투 후 영국군 2,200명 중 1,054명이 쓰러졌습니다. 이긴 쪽의 반응은 놀라웠습니다. 장군들은 침묵했고, 런던은 흔들렸습니다. 이 '승리'가 영국의 패배를 시작했습니다.
2026년 4월 18일
군사 경험이 전혀 없는 25세 서점 주인 헨리 녹스가 480km를 끌고 온 대포 60문이 보스턴을 해방시켰습니다. 1776년 3월 17일의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1776년 1월, 아메리카에 온 지 겨우 14개월 된 영국인 이민자가 47페이지짜리 팸플릿 하나로 독립이라는 단어를 모든 사람의 입에 올렸습니다.
2026년 4월 18일
조셉 워렌은 보스턴 최고의 의사였고, 독립운동의 핵심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장군 계급을 받았지만 벙커힐에서 일반 병사로 싸우다 전사했습니다. 그의 나이 34세였습니다.
2026년 4월 18일
1775년 7월, 조지 워싱턴이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혼돈이었습니다. 제복도 없고, 탄약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던 그날의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1775년 6월 17일, 민병대 1,200명이 밤새 판 참호 위에서 영국 정규군 2,200명을 세 차례 격퇴했습니다. 영국군은 겨우 이겼지만 절반이 쓰러졌고, 영국 장군은 기록했습니다. 이런 승리를 몇 번 더 하면 끝장이다.
2026년 4월 18일
렉싱턴 전투 소식이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조지아까지 퍼지며 식민지 전체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여성들의 보급 활동부터 게이지 장군의 긴급 서한까지.
2026년 4월 18일
이든 앨런의 그린마운틴보이즈 83명이 새벽에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기습합니다.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83문의 대포를 탈취한 혁명전쟁 최초의 공격 작전.
2026년 4월 18일
렉싱턴 전투 소식이 대서양을 건너 런던에 도착합니다. 조지 3세의 분노, 의회의 분열, 그리고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들어선 양쪽의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렉싱턴 이후 식민지인들은 독립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벙커 힐의 피와 워싱턴이 만난 현실, 1775년 봄의 혼란스러운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1775년 5월 10일, 필라델피아에 모인 56명의 식민지 대표들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동시에 군대를 만들고 총사령관을 임명했습니다.
2026년 4월 18일
1776년 12월, 연패에 지친 대륙군이 크리스마스 밤 얼어붙은 델라웨어 강을 건넜습니다. 맨발의 병사들이 만든 기적, 트렌턴 전투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그린에서 민병대 70명이 영국 정규군 700명과 마주섰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한 발의 총성, 그리고 독립전쟁의 시작.
2026년 4월 18일
1777년 영국의 완벽한 3방향 작전이 어이없는 실수로 무너졌습니다. 새러토가 전투와 프랑스 참전, 독립전쟁의 전환점 이야기.
2026년 4월 18일
1781년 요크타운에서 콘월리스가 항복하며 독립전쟁이 사실상 끝났습니다. 프랑스 함대의 해상 봉쇄, 영국군의 항복, 그리고 워싱턴의 놀라운 결정.
2026년 4월 18일
1775년 4월 18일 밤 10시, 보스턴의 은세공인 폴 리비어가 말에 올라탔습니다. 영국군이 민병대 무기고를 습격하러 온다는 정보를 전하기 위해. 그 한밤의 질주가 미국 독립전쟁의 첫 총성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2026년 4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