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로 돌아가기
미국역사

전쟁인지 몰랐던 전쟁 — 1775년 봄

렉싱턴 이후 식민지인들은 독립을 원한 게 아니었습니다. 벙커 힐의 피와 워싱턴이 만난 현실, 1775년 봄의 혼란스러운 이야기.

2026년 4월 18일2분 읽기

독립? 그런 얘기 아니었는데

렉싱턴·콩코드에서 총을 쏘긴 했지만, 1775년 봄의 식민지인들 대부분은 독립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상하게 들리죠? 방금 전쟁을 시작해놓고?

그들이 원한 건 "영국 시민으로서의 권리"였어요. 대표 없는 과세를 멈춰달라, 군대를 빼달라, 우리 권리를 존중해달라. 왕에게 충성하되, 의회의 횡포는 참을 수 없다는 거였죠. 독립은 아직 급진적인 소수의 생각이었습니다.

15,000명이 보스턴을 둘러쌌지만

렉싱턴 소식이 퍼지자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민병대가 일어났습니다. 약 15,000명이 보스턴 주변에 모여들었어요. 영국군은 보스턴 안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이 15,000명에게는 통일된 지휘 체계가 없었습니다. 각 마을에서 알아서 온 사람들이었거든요. 어떤 부대는 자기들끼리 장교를 선출했고, 명령이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집에 돌아갔습니다. 군대라기보다는 무장한 군중에 가까웠죠.

대륙회의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군대를 만들자"와 "왕에게 화해 청원을 보내자"를 동시에 논의하고 있었으니까요.

벙커 힐, 피로 배운 교훈

1775년 6월 17일, 보스턴 근처 벙커 힐(정확히는 브리즈 힐)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민병대가 언덕 위에 진지를 구축하자 영국군이 정면 돌격을 감행한 겁니다.

유명한 명령이 이때 나왔어요.

"눈의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쏘지 마라."

탄약이 부족하니까 한 발 한 발이 아까웠던 거죠. 영국군은 세 번 돌격했습니다. 처음 두 번은 시체더미 위를 넘으며 쫓겨내려왔고, 세 번째에서야 민병대의 탄약이 떨어져 언덕을 차지했습니다.

영국군의 "승리"였습니다. 하지만 대가가 끔찍했어요. 투입 병력 2,200명 중 1,054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거의 절반이죠. 영국의 한 장군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런 승리가 몇 번만 더 있으면, 영국의 미국 지배는 곧 끝장날 것이다."

워싱턴이 본 현실

1775년 7월 3일, 새로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조지 워싱턴이 보스턴 교외 캠브리지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만난 "군대"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어요.

군복이 없었습니다. 규율도 없었습니다. 장교와 병사가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카드 놀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 — 화약이 거의 없었습니다. 병사 한 명당 총알 9발분밖에 안 됐어요.

워싱턴은 이 오합지졸을 진짜 군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왕에게 충성 편지를 보내면서 동시에 왕의 군대와 싸우는 이 모순적인 상황에서요. 1775년 봄은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전쟁을 하고 있으면서도, 이게 정말 전쟁인지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던 시절.

새 글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새 글이 올라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