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식이 대륙을 달리다 — 렉싱턴 이후 2주차 (1775년 4월 27일~5월 3일)
렉싱턴 전투 소식이 버지니아, 캐롤라이나, 조지아까지 퍼지며 식민지 전체가 들끓기 시작합니다. 여성들의 보급 활동부터 게이지 장군의 긴급 서한까지.
버지니아에 소식이 닿다
4월 19일 렉싱턴과 콩코드에서 울린 총성은 말을 탄 전령들에 의해 남쪽으로 퍼져 내려갔습니다. 약 일주일 뒤 버지니아에 소식이 도착했을 때, 식민지는 이미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습니다.
패트릭 헨리는 이미 한 달 전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연설로 버지니아 의회를 뒤흔든 바 있었습니다. 렉싱턴 소식은 그의 경고가 헛된 과장이 아니었음을 증명했고, 버지니아 민병대 지원병 수가 급격히 불어났습니다. 버지니아만이 아니었습니다. 캐롤라이나와 조지아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13개 식민지 전체가 처음으로 같은 뉴스에 같은 분노를 느꼈습니다.
아놀드의 대담한 제안
코네티컷의 베네딕트 아놀드는 이 혼란 속에서 기회를 보았습니다. 뉴욕 북부에 있는 타이컨더로가 요새에 영국군이 비축해둔 대포와 탄약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그는 매사추세츠 안전위원회에 기습 작전을 제안했습니다.
대포 없이는 보스턴의 영국군을 몰아낼 수 없다는 것이 아놀드의 논리였습니다. 아직은 반역자로 이름이 더럽혀지기 한참 전, 아놀드는 식민지군에서 가장 대담한 전술적 사고를 가진 장교 중 하나였습니다.
게이지 장군의 절박한 편지
보스턴에 갇힌 영국군 사령관 토머스 게이지는 런던에 긴급 서한을 보냈습니다. 내용은 단순했습니다. 2만 명의 증원군을 보내달라. 그의 병력은 약 6,500명이었는데, 보스턴 바깥에는 만 오천 명이 넘는 민병대가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게이지는 상황의 심각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런던까지 이 편지가 닿으려면 대서양을 건너는 6주가 필요했습니다.
여성들이 만든 보급선
역사책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보스턴 포위전이 시작되자 민병대에게 식량, 담요, 붕대가 절실해졌고, 이 보급 문제를 해결한 것은 대부분 여성들이었습니다. 마사 워싱턴을 비롯한 여러 여성들이 물자를 모으고 운송 경로를 조직했습니다. 전장에 총을 들고 선 사람만이 전쟁을 치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전위원회와 충성파의 이탈
이 무렵 식민지 곳곳에서 안전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영국 총독의 공식 정부를 대체하는 사실상의 혁명 정부였습니다. 이들은 민병대를 소집하고, 무기를 조달하며, 영국에 충성하는 인물들을 감시했습니다.
반대로, 왕에게 충성하는 로열리스트들은 점차 위험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가게에서 거래를 거부당하고, 이웃에게 위협을 받은 이들은 영국군이 장악한 보스턴이나 캐나다, 서인도제도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혁명은 외부의 적과의 싸움인 동시에 내부의 분열이기도 했습니다.
2주 전만 해도 지역 사건이었던 렉싱턴 전투가, 이제는 대륙 전체의 위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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