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부 70명이 영국군 700명 앞에 섰다 — 렉싱턴·콩코드 전투
1775년 4월 19일, 렉싱턴 그린에서 민병대 70명이 영국 정규군 700명과 마주섰습니다. 세계를 뒤흔든 한 발의 총성, 그리고 독립전쟁의 시작.
새벽 5시, 렉싱턴 그린
1775년 4월 19일,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새벽이었습니다. 매사추세츠 렉싱턴의 작은 초원에 농부들이 모여 서 있었습니다. 총 70명. 대부분 머스킷 한 자루가 전부인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앞에 영국 정규군 700명이 대열을 갖추고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붉은 제복, 번쩍이는 총검, 훈련된 군인들. 숫자로만 봐도 10대 1이었죠.
민병대 대장 존 파커가 부하들에게 말했습니다.
"자리를 지켜라. 먼저 쏘지 마라. 하지만 그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여기서 시작하자."
누가 먼저 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냥 총성이 울렸어요. 역사책에서는 이걸 **"세계를 뒤흔든 한 발의 총성(Shot heard round the world)"**이라고 부릅니다. 몇 분 만에 민병대 8명이 죽고, 나머지는 흩어졌습니다.
콩코드에서 벌어진 반전
영국군의 목표는 렉싱턴이 아니었습니다. 진짜 목적지는 8km 떨어진 콩코드였어요. 식민지 민병대가 무기와 탄약을 숨겨두었다는 첩보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콩코드에 도착하니 무기가 없었습니다. 이미 다 옮겨놓은 겁니다. 폴 리비어를 비롯한 기마 전령들이 전날 밤부터 마을마다 달려가며 "영국군이 온다!"고 외쳤기 때문이죠. 덕분에 민병대는 무기를 감추고, 전투 준비를 할 시간을 벌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이 지옥이었다
문제는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영국군이 보스턴으로 귀환하는 약 30km 구간, 그 길이 재앙이 되었어요.
돌담 뒤에서, 나무 뒤에서, 헛간 안에서 민병대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한 곳에서 쏘고 사라지면 다음 마을에서 또 다른 민병대가 기다리고 있었죠. 영국군은 대열을 맞추고 정면으로 싸우도록 훈련받은 군대였습니다. 이런 게릴라 전술에는 속수무책이었어요.
하루가 끝났을 때 영국군 사상자는 273명이었습니다. 죽거나 다치거나 행방불명이 된 거죠. 세계 최강 군대가 농부들한테 된통 당한 겁니다.
이 하루가 바꾼 것
렉싱턴·콩코드 전투 자체는 작은 교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하루가 모든 걸 바꿨어요. 소식이 퍼지자 13개 식민지 전역에서 민병대가 일어났습니다. 보스턴은 포위되었고, 영국군은 갇혔습니다.
농부들이 증명한 건 단순했습니다. 영국군은 무적이 아니다. 훈련받지 않은 보통 사람들도 총을 들면 제국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 이 믿음이 없었다면 독립전쟁은 시작조차 못 했을 겁니다.
존 파커의 그 말처럼, 그들은 전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왔을 때, 도망치지 않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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