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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역사

왕에게 충성 편지 보내면서 군대를 만든 사람들 — 제2차 대륙회의

1775년 5월 10일, 필라델피아에 모인 56명의 식민지 대표들은 왕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편지를 보내면서 동시에 군대를 만들고 총사령관을 임명했습니다.

2026년 4월 18일2분 읽기

총은 울렸는데, 그다음은?

1775년 5월 10일,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 렉싱턴에서 피가 흐른 지 3주. 13개 식민지에서 56명의 대표가 모였습니다. 총은 울렸고 사람도 죽었는데, 우리가 대체 뭘 하는 건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독립? 아직 너무 급진적인 단어였습니다. 대부분은 영국 왕에게 권리를 인정받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싸우자 vs 사과하자

회의장은 둘로 갈렸습니다.

매사추세츠의 존 애덤스: "군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펜실베이니아의 존 디킨슨: "왕에게 청원을 보내야 합니다. 전쟁은 마지막 수단입니다."

대다수 대표들의 속마음: 세계 최강 대영제국과 전면전을? 해군도 없고 군대도 없는데? 미쳤나?


모순의 결정

결국 역사상 가장 모순된 결정 두 가지가 동시에 나왔습니다.

첫째, 올리브 가지 청원 — 조지 3세에게 *"우리는 충성스러운 신하입니다"*라는 편지.

둘째, 대륙군 창설 — 군대를 만들고 총사령관을 임명.

평화를 요청하면서 군대를 만든 것입니다.


왜 워싱턴이었나

총사령관은 버지니아의 조지 워싱턴. 전쟁 실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남부 대농장주를 세워야 뉴잉글랜드만의 전쟁이 아닌 13개 식민지 전체의 전쟁이 됩니다. 키 188센티미터, 유일하게 군복을 입고 회의장에 나타난 사람이었습니다.

워싱턴은 수락하면서 말했습니다. "이 책임을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월급은 받지 않겠습니다."


조지 3세의 답

올리브 가지 청원이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조지 3세는 읽지도 않고 거부했습니다. 대신 식민지를 반란 상태로 선포하고, 독일에서 용병을 고용했습니다. 자국 식민지 사람들을 외국 용병으로 진압하기로 한 것입니다.

이 소식이 전해졌을 때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반역자의 형벌은 교수형. 화해는 불가능해졌고, 돌아갈 길도 사라졌습니다.

1775년 5월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청원을 보낸 사람들이, 1년 뒤에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게 됩니다. 제2차 대륙회의는 자기도 모르게 미합중국의 첫 번째 정부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사건: 1775년 5월 10일~ | 장소: 필라델피아 독립기념관 | 핵심 인물: 존 애덤스, 존 디킨슨, 조지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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