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을 거부했다 — 워싱턴의 흑인 병사 입대 금지령 (1775년)
1775년 8월, 워싱턴은 흑인의 대륙군 입대를 금지했습니다. 석 달 후 영국군이 흑인에게 자유를 약속하자, 워싱턴은 결정을 뒤집었습니다.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들
1775년 여름, 대륙군 진영에는 흑인 자원자들이 있었습니다. 자유인도 있었고, 주인 몰래 탈출한 노예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독립전쟁에서 싸우면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워싱턴의 결정
1775년 8월, 총사령관 워싱턴은 장교들과 회의를 열었습니다.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흑인과 노예의 입대를 금지한다.
이유는 정치적이었습니다. 버지니아·사우스캐롤라이나 백인 지주들의 반발을 살 수 없었습니다. 노예제 기반 남부 식민지가 독립운동에서 이탈하면 전쟁 자체가 무너질 수 있었습니다.
자유를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들을, 자유를 위한 전쟁이 거부한 것입니다.
던모어의 선언
1775년 11월 7일, 버지니아 영국 총독 던모어 경이 선언을 발표했습니다.
"영국군에 합류해 싸우는 노예는 자유를 준다."
수백 명의 흑인이 즉시 영국군으로 달려갔습니다. 던모어는 이들로 '에티오피아 연대'를 창설했습니다.
대륙군 입장에서는 전력 손실이자 충격이었습니다.
번복
1776년 1월, 워싱턴은 자유 흑인의 재입대를 허용했습니다. 전쟁이 길어지면서 병력이 절실했고, 흑인 병사 없이는 싸울 수 없다는 현실이 이념을 이겼습니다.
독립전쟁 기간 동안 약 5,000명의 흑인이 대륙군에서 싸웠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대부분은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사건: 1775년 8월 금지령 → 11월 7일 던모어 선언 → 1776년 1월 번복 | 흑인 참전자: 약 5,000명
새 글을 이메일로 받아보세요 ✉️
새 글이 올라오면 바로 알려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