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벽에 요새를 훔치다 — 타이컨더로가 기습 (1775년 5월 10일)
이든 앨런의 그린마운틴보이즈 83명이 새벽에 타이컨더로가 요새를 기습합니다.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83문의 대포를 탈취한 혁명전쟁 최초의 공격 작전.
같은 날, 두 개의 시작
1775년 5월 10일은 역사가 두 번 시작된 날입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제2차 대륙회의가 개회했고, 500킬로미터 북쪽 뉴욕 챔플레인 호수 기슭에서는 한 무리의 남자들이 배에 올라 새벽 어둠 속으로 노를 저었습니다.
목표는 타이컨더로가 요새. 프렌치-인디언 전쟁 시절 프랑스군이 세운 성채로, 지금은 영국군 48명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요새 안에는 대포 83문과 상당량의 박격포, 탄약이 비축되어 있었습니다. 보스턴을 포위한 민병대에게 절실한 화력이었죠.
이든 앨런과 그린마운틴보이즈
이 기습을 이끈 사람은 이든 앨런이었습니다. 버몬트 출신의 거대한 체구를 가진 이 사내는 정규군 장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뉴햄프셔 보조금 분쟁에서 뉴욕 정부와 싸우던 민병대 그린마운틴보이즈의 지도자였습니다. 영국과 싸우기 전부터 이미 반골 기질이 뼛속까지 박혀 있던 사람입니다.
앨런의 부대원은 83명. 여기에 코네티컷에서 공식 임무를 받고 온 베네딕트 아놀드가 합류했습니다. 두 사람의 지휘권 다툼이 잠시 벌어졌지만, 앨런의 부하들은 아놀드를 따를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앨런이 선봉에 섰습니다.
총성 없는 승리
새벽, 보초는 졸고 있었습니다. 앨런과 부대원들은 요새 성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앨런은 영국군 사령관의 숙소 문을 걷어차며 외쳤습니다.
"위대하신 여호와와 대륙회의의 이름으로!"
잠옷 차림의 영국군 사령관은 항복 외에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영국 병사 48명은 단 한 발의 총성 없이 포로가 되었습니다. 부상자도 사망자도 없었습니다. 전쟁 역사에서 이토록 깔끔한 승리는 드뭅니다.
83문의 대포, 480킬로미터의 여정
탈취한 대포의 진정한 가치는 몇 달 뒤에 드러납니다. 겨울이 오자 25세의 포병 장교 헨리 녹스가 이 대포들을 끌고 480킬로미터를 이동하는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를 맡게 됩니다. 얼어붙은 호수와 산길을 넘어 보스턴 근교 도체스터 고지까지 옮겨진 대포들은 1776년 3월 영국군을 보스턴에서 철수시키는 결정적 무기가 됩니다.
타이컨더로가에서 잠자던 48명의 영국 병사는 그날 아침 자신들이 넘긴 것이 요새 하나가 아니라 전쟁의 흐름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최초의 공격 작전
렉싱턴과 콩코드는 영국군이 먼저 왔기에 방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타이컨더로가는 달랐습니다. 식민지인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한 최초의 공격 작전이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저항이 아니라 전쟁을 선택한 행위였습니다.
5월 10일 새벽, 83명의 민병대가 요새 하나를 훔쳤고, 그 요새에서 나온 대포가 보스턴을 해방시켰습니다. 작은 기습이 역사의 방향을 바꾼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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