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 군대가 있기나 한 건가 — 워싱턴의 보스턴 도착 (1775년 7월)
1775년 7월, 조지 워싱턴이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을 때 마주한 것은 군대가 아니라 혼돈이었습니다. 제복도 없고, 탄약도 없고, 화장실도 없었던 그날의 이야기.
총사령관이 도착했다
1775년 7월 3일, 조지 워싱턴이 매사추세츠 케임브리지에 도착했습니다. 대륙회의가 그를 대륙군 총사령관으로 임명한 지 약 2주 뒤였죠. 긴 여정을 마치고 말에서 내린 워싱턴이 처음 본 광경은, 한마디로 재앙이었습니다.
제복을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장교들이 사병들과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어요. 보초는 자고 있었고, 어떤 병사들은 총조차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화약은 1인당 고작 9발분. 참호는 엉망이었고, 화장실 시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캠프 전체에서 악취가 풍겼죠.
워싱턴은 편지에 이렇게 썼습니다. "여기에 군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세우다
하지만 워싱턴은 불평만 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도착한 첫 주부터 그는 변화를 시작했어요.
장교와 사병 사이의 위계를 확립했습니다. 카드놀이는 금지됐고, 보초 근무에 실패하면 처벌을 받았습니다. 참호를 다시 파고, 방어선을 재정비했죠. 각 부대의 인원을 정확히 파악하고, 훈련 일정을 만들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병사들의 복무 기간이 그해 말에 만료된다는 것이었어요. 즉, 12월이 되면 이 "군대"는 법적으로 해산되는 겁니다. 워싱턴은 아직 전쟁을 시작하지도 못한 채 군대를 잃을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조지 3세, 문을 닫다
한편 대서양 건너 런던에서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었습니다.
대륙회의는 올리브 가지 청원서를 보냈습니다. "폐하, 우리는 여전히 충성스러운 신민입니다.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합시다." 이것이 마지막 화해의 손길이었죠.
조지 3세는 읽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청원서를 거부하고, 1775년 8월 식민지가 반란 상태에 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어요. 독일의 헤센 용병을 고용해 식민지에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자국 신민을 진압하기 위해 외국 용병을 쓴다는 것, 이것은 많은 식민지인들에게 최후의 모욕이었습니다.
평화의 문이 닫히다
이 소식이 아메리카에 전해지자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아직 독립을 외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왕에게 호소하면 해결될 것"이라는 희망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영국과의 화해라는 선택지가 하나씩 사라져가고 있었어요.
케임브리지에서 워싱턴은 엉망인 군대를 겨우 추스르고 있었고, 런던에서 조지 3세는 대화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1775년 여름, 전쟁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평화의 문은 이미 닫히고 있었습니다. 되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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