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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선언 7주 후, 워싱턴이 뉴욕을 잃었다 — 뉴욕 함락 (177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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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선언 7주 후, 워싱턴이 뉴욕을 잃었다 — 뉴욕 함락 (1776년)

1776년 8월, 독립을 선언한 지 7주 만에 영국군 3만 2천 명이 상륙했다. 워싱턴은 뉴욕 전체를 잃었다.

2026년 4월 19일1분 읽기

역대 최대 침공

1776년 7월 4일, 독립을 선언했다.

7주 후, 영국군 3만 2천 명이 롱아일랜드에 상륙했다. 영국이 지금까지 파견한 원정군 중 가장 큰 규모였다. 군함 400척이 뉴욕 항구를 채웠다.

워싱턴의 대륙군은 약 1만 9천 명이었다.


롱아일랜드 전투

8월 27일, 전투가 시작됐다. 영국군은 대륙군의 측면을 우회해 포위했다. 미국군 1,400명이 포로로 잡혔다. 워싱턴은 브루클린 고지에 고립됐다.

철수하지 않으면 전군이 포로가 될 상황이었다.


안개 속의 탈출

워싱턴은 탈출을 결정했다. 8월 29일 밤, 짙은 안개가 깔렸다.

9,000명의 병사가 소리 없이 배에 올랐다. 동틀 때까지 이스트강을 건넜다. 영국군은 아침이 되어서야 진지가 비어 있다는 걸 알았다.

역사가들은 이 탈출을 기적이라 부른다.


뉴욕을 잃다

9월 15일, 영국군이 맨해튼에 상륙했다. 워싱턴은 북쪽으로 후퇴했다. 뉴욕 전체가 영국의 손에 넘어갔다. 뉴욕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영국의 기지로 남았다.


페인의 문장

그 겨울, 토마스 페인이 썼다.

"지금은 사람의 영혼을 시험하는 시간이다."

워싱턴은 이 글을 병사들에게 읽어줬다. 그리고 12월, 델라웨어 강을 건넜다.


날짜: 1776년 89월 | 영국군: 32,000명 | 탈출 병력: 9,000명 | 안개 속 도하: 8월 2930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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