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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일을 걸어서 포화 속으로 — 게티즈버그 전투 (186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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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일을 걸어서 포화 속으로 — 게티즈버그 전투 (1863년)

1863년 7월, 3일간 5만 명이 쓰러졌다. 피켓의 돌격 — 1만 2천 명이 1마일 개활지를 걸어서 북군 포화 속으로 들어갔다. 절반이 돌아오지 못했다.

2026년 4월 24일1분 읽기

북진

1863년 여름, 로버트 E. 리가 다시 북쪽으로 진격했다.

목표는 펜실베이니아. 북부 심장부를 위협해 강화 협상을 이끌어낸다.

7월 1일, 게티즈버그 외곽에서 양측이 충돌했다.


3일

7월 1일. 북군이 밀렸다. 게티즈버그 시내를 잃었다.

7월 2일. 북군이 세메터리 리지를 지켰다. 남군의 측면 공격이 실패했다.

7월 3일. 리가 도박을 선택했다.


피켓의 돌격

오후 1시, 남군 포병 150문이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2시간 포격.

오후 3시, 1만 2천 명이 대형을 갖추고 걷기 시작했다.

1마일. 개활지. 숨을 곳이 없었다. 북군 포병과 소총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15분 후, 절반이 쓰러졌다. 돌격은 실패했다. 리가 후퇴했다.


전환점

3일 동안 양측 합계 5만여 명 사상.

리는 다시 남쪽으로 돌아갔다. 두 번 다시 북부를 침공하지 못했다.

게티즈버그가 전쟁의 전환점이었다. 4개월 후, 링컨이 이 전장에서 말했다.


전투 기간: 1863년 7월 1~3일 | 총 사상자: 약 5만 1천 명 | 피켓 돌격 병력: 1만 2천 명 | 돌격 사상자: 약 6천 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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